내가 가장 존경하는 성자(聖者)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주(主님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생명이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순수하게 바랐다. 자기의 생명을 완성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의 생명이 완성되기를 바랐다. 그러기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았고 그 진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만에 하나 벗어난 일이 있더라도 곧 자기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진리의 길에 들어 설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를 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성인 뿐만은 아니다. 자기를 용기(勇氣)있고 바르게 산 사람들도 좋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도 힘이 생기는, 그런 사람이 나는 좋다. 그들은 생명의 사도(使徒)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힘차게 그들이 확신하는 길을 걷는다.
알 찬 길이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생명을 최고조(最高調)로 살려간 사람들이다.
살아 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의 삶을 방해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을 밀치고 제키면서 자기만 살면 된다는 사람을 나는 존경할 수 없다. 그는 자기를 바르지 못한 삶으로 산 사람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길에는 무지(無智)하고 생명의 원천인 왕(王)이 기뻐하지 않는 삶을 산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에게 당한 사람은 착한 이로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사람을 눌러 제치고 나아가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우러르고 싶지 않고 더욱이 존경하지도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이는 자기를 충실하게 살리면서 다른 사람도 충실하게 살도록 마음에 새겨 돕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비로로써 생명의 의지에 들어맞게 사는 것이다.
하등도물은 자기가 살리기 위해서 상대를 죽이고 잡아먹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러나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다른 동물에 관해서는 잠간 제쳐두고. 인간친구들은 다른 이를 밀어 넘어뜨리지 않아도 자기를 살리는 길이 얼마든지 넘쳐있다. 세속적인 출세는 사람을 억누를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신적인 자기단련을 위해서는 조금도 다른 이를 해롭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른 이의 생명을 사랑하며 돌보는 방법이 달련의 한 방법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인격을 만드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인격을 흠집 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충실하게 다함은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두 우두머리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세력 다툼일 때고, 자기를 잘 살려 가는 길에는 결코 다른 사람의 훼방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도움을 주 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조화하여 가는 길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길이다.
다른 이의 생명을 부정하며 사는 방법은 반드시 적을 만든다. 한(恨)을 산(買)다. 그러나 서로가 살아가는 길이라며 그렇게 살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하게 된다.
여기에 인생의 구원이 있다. 이 길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인간 세상도 먹고 먹히는 세상으로 되어 돕고 도움 받는 것은 되지 않는다. 다행이 인간에겐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길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이 길을 가야하겠기에 자기를 완성(完成)하고 싶은 것이다. 무샤노고우지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