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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2 인간은 무슨목적으로 생겨났는가  3 존재함에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4 불가사의한 힘  5 인간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6 신체의 고통은 낫게 하기 위한 것  7 고통에 지는 것은 옳지 않다.  8 고통을 느낄 때  9 육체의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다  10 육체의 고통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11 오로지 자기의 선심을 드러내려고 하는 짓은 야만적  12 건강이 최후의 목적은 아니고 최초의 조건  13 죽도록 의무를 다한 사람, 죽도록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     14 자기를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이다.  15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16 바르지 못한 일이란?  17 훌륭한 일이란, 인생에 보탬을 주는 역할이 있는 일.  18 사람을 참으로 살게 하는 길  19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20 쾌락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보수다.  21 성욕을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22 연애는 훌륭한 자녀를 두기위해서 한다.  23연애는 인생의 시고 꽃이다.  24 중요한 일이란 무엇인가?  25 인생에서 사랑을 뺀다면 무엇이 남는가 ?  26 죽어 없어지지 않는 것이란 무엇인가?  27 태어나지 않은 인간의 전신이 얼마나 많은가!  28 자연의 의지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29 자연이 우리에게 준 제재(制裁)  30 죽음을 이길 특권을 주는 것이다.  31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32 이제는 죽어도 좋습니까?  33 무엇인가를 하기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34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  35 직업의 귀천  36 인간에게 주어진 것을 슬기롭게 살려가라.  37 이성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여야하며   38 그런 사람의 생명을 그 순간은 긍정하는 것이다.   39 인생에서 최상(最上)의 것은 무엇인가?  40 인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할 것인가!!  41 사라져가는 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본다.   42 사랑만이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다.   43 생명의 샘은 이런 싱싱한 인간을 통하여 활약( 活躍) 한다.  44 인류를 위해서 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45독립성에 상처를 주지 않고 사귀어야 한다.  46사회를 위한 당연한 의무인것이다   47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48 자기를 향상시키면 자연이나 인류에게서 확실하게 사랑받는다.  49자기의 생명과 꼭 들어맞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50사람마다에 합당한 사명이 있는 것이다.  51진심어린 내 마음을 행동에 옮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52생명을 긍정하는 곡을 일생을 바쳐 키려고 하는 노력을 할 밖에 없다.  53.불가능한 것을 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나무랄 수 없다.  54나, 푸른 하늘아래 서서 우러러 부끄러울 바가 없노라.  55 그런 그에게 무엇인가 다가와서 다독이고 있다.  56.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57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다58인간은 스스로 가능한 것만 해내도 대견하다.  59자기마음의 조각들을 주어가면서 걸어가는 것이다.  60악마는 이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61그 때 그 사람은 진보하고 생장(生長)한다.  62뒤는 당신에게 맡깁니다.  63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하노라!  64이 땅에서 살 수 있을 때까지 아름답게 사시오!  #우리에게는 힘이 없다는 말을 부끄러워해라  # 생명의 의지 1.생명이 없는 곳에 진정한 의미는 없다.  #생명의 의지2.과도기의 동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생명의 의지3.우리의 이상은 생명의 이상이다.  #생명의 의지4.여기에 인생의 구원이 있다.  #사랑에 대해서1.이것을 제대로 알 때 사랑의 가치가 정해진다.  #사랑에 대해서2.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 가 없다.  # 사랑에 대해서3.사랑의 극치(極致)는 죽음을 아득히 초월(超越)한다. # 장어와 연어(섭리)  #외로움

외통역인생론 / 무샤노고우지사네아쓰 (武者小路實篤)

외통역인생론30.죽음을 이길 특권을 주는 것이다.

거듭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 사물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느끼도록 하기대문에 느끼고,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차리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자연이 의미 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런 뜻도 없이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때 인간을 즐겁게 하고 필요한 때 또 인간을 고통스럽게 했다가 약하게 하거나 해서 인간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을 독자에게 확실하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자연이 인간을 살리고 싶은 것처럼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잘 이끌어갈 사람이(란 것을 나는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확실한 예증을 들어서 이때까지 얘기 했고, 앞으로도 두세 번 이런 예를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 주어진 것 중에 제일 두려운 죽음도, 인간육체의 고통도 마찬가지로 단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기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고, 되도록 그 사람을 오래 살도록 하기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를 준 것은 인간이 아닌 것임은 알고 있다. 이것은 자연에서 주어진 것인데, 만약 인간이 자기마음대로 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도록 만들었다면 인간은 바로사멸 되고 말았을 것이다. 즉, 죽는 것이 고통이 아니고, 두렵지도 않고,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이 귀찮아질 때면 누구라도 죽어간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견지에서 자살은 안 된다고 해도, 잠이 올 때 자도록 되어 진 것처럼 된다면, 살아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 스스로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른다고 하드래도 인간을 만들어낸 힘이 얼마나 인간을 살 수 있는데 까지 살리려고 하는지는 죽음의 공포의 세기(强)로 알 수 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사람이 겁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이 인간을 어떻게 하든지 살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개인이 죽는다는 것을 자연은 알고 있다. 결코 개인이 죽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생명으로 위탁 밭고 있는 것이다. 즉 각자는 하나의 생명을 맡아놓았다. 그것을 잘 살려가든 나쁘게 살려가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인 것이다. 자유라고 해서 절대적인 자유는 아니지만 전부 맡겨진 것은 사실이다. 어느 주인의 돈을 맡기면서, 이것을 주니 좋게 쓰도록 하라는 명을 받은 아랫사람과 같다. 무엇을 사든 좋다. 그러나 그 산 것으로 해서 그 사람의 슬기로움과 아둔함을 안다. 유익하게 쓰던 해롭게 쓰던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마음에 들도록 쓴 사람은 주인에게 신용을 얻고 또 사랑받을 것이다. 돈을 주인의 뜻에 맞지 않게 쓰는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냉대 받을 것이다. 우리는 맡은 생명을 자연에게 사랑받도록, 생명의 왕에게 귀염 받도록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 것이다. 물론 운(運) 불운(不運)도 있을 것이고,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장수 하거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거나 쾌락을 많이 맛보는 수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드래도 마음은 공허하고 저 깊은데서 오는 생명이 즐거움은 차차 인연이 끊어지면서 자연에게서 사랑받는다는 기분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그러니 이제는 죽어도 좋다고 하는, 차분한 기쁨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죽음의 공포가 주어졌지만 그래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누구든지 죽음의 공포를 맛보지 않고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자연으로부터 죽어도 좋다고 허락받은 때에 죽는 사람에게 죽음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은 때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사명을 다하게 하기위해서다.

건전한 죽음은 편안한 죽음인 것이다. 무리하게 죽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해서 죽음의 공포를 맛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서 할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아네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수명(受命)의 몫을 다했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허락받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죽음을 뛰어 넘는 생활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을 희생해도 좋다는 일에 부닥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죽음을 자연이 기꺼이 바랄 때 그 사람은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그 사람이 죽음으로서 다른 사람의 생명이 구해질 때라든지, 그 사람이 죽음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된다든지, 또 그 사람이 죽음으로 그 사람의 의무를 다할 때라든가 할 때, 그 죽음은 삶 이상으로 이롭다고 사람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찬미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추기며 또 그 일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 것도, 자기 주인이나 선생을 위해서 죽는 것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발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이 허락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 방법을 자연이나 인류가 바랄 때에 한한다.

자기의 책임 하에 맡겨진 어린이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머니가 자식을 구하려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편으로 슬프기도 하다. 더군다나 살아 있어야할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럿이 보는 앞에서 죽어가면서도 태연하게 여겼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적인 것이고 용맹스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평화로운 죽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낸 사람의 죽음이다.

소크라테스는 독살되었지만 실로 철학자다운 평안한 죽음이었다. 제자들은 슬퍼했지만, 이 때, 위로한 쪽은 소크라테스였고 위로받은 사람이 오히려 살아남는 제자였다.

제자가 죄 없이 죽는 스승을 위로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너는 내가 죄가 있어서 죽기를 바라느냐?”

고 했다고 듣고 있다. 그 죽음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석가모니의 죽음을 쓴 곳에 “어차피 건너야 할 사람이니 건너가 버렸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할 일을 다 한사람의 죽음처럼 편안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여야 할 일을 아무 것도 안 하고 먹보로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살면서 할 일을 다 한 때는, 죽음은 공포의 그림자를 들어내지 않고 반가운 자태를 보이든가, 뭐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옛날부터 적잖이 있어왔다. 이름은 애석해도 죽음은 애석해하지 않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죽음의 두려움은 참을 수 없지만 이것을 자연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준 것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에 따라 죽는 길을 태한다면 죽음은 개선(凱旋)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잘 살려가지 않고 사리사욕만으로 살아가면서 죽음의 두려움 없이 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리다.

인간은 당신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지어진 주제에, 자기에 집착하면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있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죽어야 하는 것을 자연은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살 수 있는 데까지 살려서 그 사람의 진가(眞價)를 되도록 이 땅 위에 토해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땅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될 수 있는 한 해 내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땅에서 그 사람이 최상의 삶을 산다면 자연은 그 이상의 것을 인간에게 바라지 않고 그 사람에게 죽음을 이길 특권을 주는 것이다.

무샤노고우지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외통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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