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서 하나를 빼면 영이 된다. 인생에서 사랑을 뺀다면 무엇이 남는가? 땅에서 물을 뺀다면 사막이 되는 것과 같다.”
인생에서 사랑이 없어지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버이를 사랑할 수도 없고 부모의 사랑도 못 느끼고, 나이가 차서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아무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식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무엇보다 꽃을 보고도, 산을 보고도, 사랑하는 감정이 없다면 인생은 무미건조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할 대상이 하나도 없이 살고 있다면 벌레나, 나비나, 뱀이나, 몸속의 이나, 날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과 같다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사람은 저주받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면, 인생은 확실히 저주 할 인생일 뿐이다.
먹는 것에도 맛이 없고, 보아도 색이 안 보이고, 형체에도 매끄러움이 없고, 아름다운 것이 이 지상에 없다면, 들리는 것은 이를 가는 톱날 같은 소리거나,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나는 바이오린 소리뿐이라면 인생은 얼마나 상막할 것인가?
그렇다 하드래도 인간으로 태어나버렸다면 체념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친절한 사람 하나 없고 걱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다면, 인자함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면, 서로 미워하고 경멸하고 냉혹하게만 느껴진다면, 인생은 지옥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또 인생의 표면에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난다고 하여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실로 많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게 있다.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도 가는 곳마다에 있다.
인간세상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반(反)이상적인 일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고, 더구나 병이 이 땅에서 사라질 때는 없을 것이다. 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도 많다. 약한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천재지변도 있다. 이런 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이 인간으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충분히 살려 나가지 않기 때문이지 인간의 숙명적 불행은 아니다. 앞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대부분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때가 되더라도 불행한 인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해서 인간은 이런 것들에 구애되어 헤매지 않고 어디까지나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을 명령받고 있다.
도중에 넘어지는 이, 젊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자연은 예상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해서 내가 만약 불평을 한다면 이렇다. 즉, 자연은 너무 인간을 살리려고 생각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동정이 적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모든 동물은 살아가는 데에는 강하면서도 반드시 죽고, 죽으면서 고통 받고, 두려움에 대해서도 자연은 그리 동정을 베풀지 않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낳기 위해서는 쾌락으로 인간을 이끌고, 이를 위한 필요에서 성욕을 주었으면서 죽을 때에는 어차피 고통을 주어도 죽는 사람은 죽고, 생겨난 것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 고통스러워도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때문에 고통을 내버려두는 것 같기도 하다.
출산하는 것도 그렇다. 어차피 생긴 것은 고통스러워도 낳을 수 밖에 없다. 자식을 만드는데 낳을 때처럼 여자에게 고통이 주어진다면 아무도 자식을 잉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밴 것은 어차피 낳게 돼 있으므로 자연은 낳는 고통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는 만사가 이런 식이다. 나쁜 병에 걸렸어도 자연은 그다지 동정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동정심을 일으키게 하는 대신에 혐오의 정도 일으키게 하는 것도 자주 있는 것이다.
물론 병나는 것을 좋아해서 전염이 되는 쪽이 좋다고 한다면 인류의 성장에 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보통사람이 병자를 피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병자에게는 모진 고통인 것이다.
인정이란 것은 이런 혐오스러운 사람을 위해서 사람들이 돕도록 하는 경유가 많지만, 자연은 모른척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랑은 이점에서 몹시 가엽고, 위로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살아 있는 사람의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인간다운 동정은 미덕일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염세적(厭世的)으로 되거나 살아가는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살아남는 사람들에 대한 죽는 이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 그 공에 감사함은 온당한 것으로써 자연스러운 것이다. 죽은 이는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죽은 뒤에 사람들이 자기에게 냉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지 않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뒤에 적고 싶다. 얘기가 조금 빗나가지만 인생에서 사랑한 다는 것은 인생을 윤택하게 함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따뜻하게 한다. 사랑할 능력을 인간에게 주어서 이 세상에 사랑할 값어치가 많다는 것은 기쁨임에 틀림없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