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 인생에서 최상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최상(最上)의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아름다움(미:美)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모두 도덕이상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또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서, 한마디로 아름답다고 말하고서는 그 뜻을 헬 수 없다.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는가하면, 정신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육안(肉眼)으로 보는 아름다움은 도덕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어서 도덕이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동화한 기분은 도덕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육안으로 보는 아름다움은 도덕과는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으니 도덕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을 넘어섰다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눈이 없으면서도 인간에는 아름다움을 좋아하도록 하고 있다. 어째서 그럴까? 그것은 우주와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생각되지만 확실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정신적 아름다움에는 도덕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낀다.
그 한 예로서 모성애를 들 수 있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이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본능적이다. 보다 순수하고 자연 적인 것이다. 인생에서 보다 아름다운 것의 하나가 어머니의 사랑인 것이다. 자기를 바치는 사랑인 것이다. 도덕에는 어딘가 빈 데가 있다.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못 미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아름답다. 적어도 순수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온전한 것이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아름답다. 이는 육체적 아름다움인 동시에 선(善)이상인 아름다움인 것이다. 사랑의 극치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마음이 좀 쓰이기는 하지만- 이는 자연과, 본능과, 사랑과, 인류의 의지가 하나로 되어있는 아름다움이다. 본능 그대로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도덕은 인간의 불완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인간을 완전성에서 생겨났다. 누가 어머니의 사랑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가? 그냥 그대로 아름다움인 것이다. 물론 어머니도 인간이므로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뒤섞이긴 하지만 어머니와 자식사이는 순수한 것이다. 더구나 갓난아기 때의 엄마사랑은 완전한 것이고, 그대로 아름다움의 본바탕인 것이다.
만약 인간이상의 세상이 있다면 거기에는 도덕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사랑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그러한 세상에서 통용되는 사랑이리라. 노력(努力)이 없고 무리(無理)도 없으며 보다 자연 그대로의 자태로써 그대로 좋은 것이다.
연애도 그럴 것이다. 온전한 연애가 있어서 도덕적인 것이냐? 아니냐? 하고 말할 것이 아니리라. 그대로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대로 좋은 것이다. 그대로 인류의 생장(生長)에 한 몫을 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인간적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완성인 것이다.
이런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본능 그대로 쫓은 것이어서 완전한 것이다. 자연 그대로 좋은 것이다. 있어야할 곳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은 거기까지 이르지를 못한다. 또 무심(無心)으로는 되지 않는다. 노력(努力)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력적(自力的)인 것이다. 이것이 인간다운 것이고, 우리를 발분(發憤)하게하는 대목이 있다고 하드래도 완전(完全)한 것과는 다르다.
노력하고 공부하고 정진(精進)하는 것은 인간다운 것이다. 언제나 반성하고 마음을 바르게 갖고 지성(至誠)으로 사람이 갈 길을 밟아 가기에 힘쓴다고 하면 이는 훌륭한 일이지만 거기에 거인적(巨人的)인 면을 느끼게 되어 긴장은 되지만 편안하지는 않다. 무심(無心)도 아니다. 무엇엔가 맡겨버린 듯 편안함도 없다.
나는 노력(努力), 근면(勤勉), 정진(精進), 생장(生長)을 찬미(讚美)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괴로움을 벗을 수 없다.
완성(完成)을 겨냥하여 나아감은 어떻든 인간적(人間的)이고 거인적(巨人的)이다.
하지만 그대로 완성되어 있으며 그대로 좋다고 보기에는 신적(神的)인 것, 신(神)에게 의탁하는 것, 나 외의 어떤 힘으로 인하여 안심되는 기분, 무심(無心)인 채로 만족 되는, 거기에는 노력도 정진도 없고 사랑과의 융합(融合)만이 있을 뿐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