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만든 말 중에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말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이 둘이 인생의 무미건조함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이다. 이 둘이 덤덤하게 만들어졌다면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이 실로 불행한 일이며 구원이 없는 세상에 내 던져진 것과 진배없다. 다행이 우리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되어있어 이 점을 누리게 되었으니 기뻐할 일이다.
사랑하는 대상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윤기 없는 삶이다. 사는 보람도 없는 것이다.
사는 즐거움은 사랑으로부터 온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인생을 살아낼 수 없도록 되어있다.그래서 사랑해야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 될수록 사랑의 대상이 불멸의 대상으로 되면서 우연(偶然)의 힘을 빌지 않고서도 살아내는 것이다. 즉 현명한 사람은 진리나 신(하느님)을 사랑한다. 찬미한다. 그는 여인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벗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만남은 행복하다. 연인은 아니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도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불멸(不滅)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변하기 쉬워 그 사랑을 함께 꾸준히 이어 내릴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그런 사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연에 속(屬)한다. 더구나 그 상대가 자기보다 오래 살아 줄 것인가 아닌가를 알 수도 없다. 또 상대가 자기보다 잘 살아준다 해도 언젠가는, 그렇게 오래지 않은 장래에 어느 한 쪽 이 죽는다. 그들은 우리의 생명을 긍정하는 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에 반해서 이웃 사람이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진리에의 사랑이든가, 또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이쪽의 자격이 있기만 하다면 상대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격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대신 일단 그 자격을 갖추면 그 기쁨은 그 사람의 머리를 부수지 않는 한 이어진다.
머리가 망가져도 인간이 기뻐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뇌가 자유롭게 활동 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한 사랑은 늘 대상을 얻고 거기에서, 진리에서 오는 기쁨을 맞이할 것이다. 친구 중에 소심한 사람 하나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던 나머지 자살한 일이 있다. 인간의 질투심에 무서운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살했다면 심약한 사람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집착(執着)이 강한 사랑에 의해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해야만 자기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불안하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서 배신당하지 않는다. 공자는 여인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집착이 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그들의 사랑이야말로 우리에게 편안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 어떤 사랑이 편안한 사랑이고 어떤 사랑이 불안한 사랑인가?
이것을 제대로 알 때, 사랑의 가치가 정해진다.
일시적인 사랑, 우연하게 지배되는 사랑은 강한 힘이 있어서 우리는 이를 즐길 수 있는 데까지 즐기기는 하지만 여기에 너무 집착하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불안한 느낌을 준다. 그때에 그 사랑이 다시 조용하게 영속적(永續的)이며 우연에 지배되지 않는 사랑으로 바로잡히면 좋지만 이를 방해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면 위험하다. 차분해지지 않는다.
인간에겐 여러 가지 본능이 있다. 인간은 우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의 사랑이 필요하다. 생명에 너무 집착하는 이는 행복하지 않지만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이도 또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어서 인간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 자녀를 두고 이들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연애와 어버이의 사랑이 주어졌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행복이지만 여기에도 너무 집착하면 불행해지며 번뇌(煩惱)가 따른다. 부부는 상대의 인격에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살면서보다 큰 다른 사랑을 키워감이 필요하다. 무샤노고우지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