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고통에도 여러 가지의 종류와 심하고 덜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낱낱에 대해서 쓰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아픔을 느끼는 것은 건강을 잃었을 때의 경우가 많으므로 건강을 회복하는 것만이 그 첫째 해결책이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망가뜨리는 것은 일순간에 되지만 낫게 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낫게 하려면 아픔을 참아야할 필요도 있다. 아무리 아프다고 고함을 쳐도 낫지 않는 것처럼, 아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픔을 참아 이길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우리는 통증을 존경하지 않지만 그 아픔을 참는 사람을 존경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픔을 그냥 참아내면서도 나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현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픔을 견디어내면서 고치려는 사람이 현명하다. 또 그런 사람을 위해서 돕는 것도 착한일이다. 의사를 일러서 인술(仁術)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다 자연의 의지(意志)로 되돌리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일시적으로 없도록 속이는 것은 자연의 의지를 거스르는 것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근본적으로 낫게 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낫도록 애쓰려면 고통은 있어야하기 때문에 고통을 되도록 덜 느끼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지극히 문명적인 방법이다.
일시적으로 고통을 없애는 속임으로 건강을 잃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고통을 덜 느끼게 하는 것은 인간다운 방법으로 문명이 진행됨에 따라 고통을 느끼지 않고 건강을 되찾는 일에 골몰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에 지는 것은 옳지 않다. 고통을 참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의 세기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건강을 위한 바탕위에서의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으로서 최상의 것이 육체만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먼저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자연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마음 쓰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