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서는 뒤에 쓰기로 하고. 육체의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다. 원래 육체는 개인적인 것이라서 육체의 고통도 개인적으로, 갑(甲)이 아픔을 느껴도 을(乙)에게는 그 아픔이 같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을 말하자면, 한 사람의 육체가 고통을 느낄 때 다른 사람도 육체의 고통을 느낀다면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간병도 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육체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음은 좋은 일이지만, 한편 잔혹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육체를 고통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은 좋은 점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비인도적인 인간이고 몰인정한 사람이다. 때로는 병적인 인간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는 것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정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큰 수치이지만, 그러나 육체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안 된다.
이런 말을 들으면, 공평한 사람이라면 누구라고 실은 느낌이 들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고통을 주는 놈에게 벌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통쾌하다. 이것이 인정이다.
다른 사람의 심한 육체적 고통을 우리가 느끼지 않게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도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도덕에서 말할 때 다시 한 번 이 점을 얘기하려고 한다.
단지 여기서는 육체적 고통은 개인적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그래서 다른 이를 귀찮게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