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냥 살기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저 무의미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으로는 미흡(未洽)하다. 공허(空虛)다. 사는 보람을 찾을 수 없다. 무엇인가를 하기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인생에서 오래 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은 아닌 것이다. 또 건강한 것, 그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건강도 장수(長壽)도 결국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할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건 하면 되는 것인가? (생략) 인간은 단지 일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아란 책을 쓴 힐티(ヒルチ-)가 이에 대해서 적절한 예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무의미한 것은 아무리 돈이 되더라도 해낼 기분이 나지 않는다면서 말하기를, 한사람에게 방안에서 손수건을 그냥 위로 들었다가 내렸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면 돈을 준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처음에는 승낙하고 손수건을 올렸다 내렸다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는 중 바보같이 생각되어서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그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앞서 충분하게 읽었기 때문에 말하는 방법은 달라도 내용은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전혀 의미 없는 것을 하면서 귀한 시간을 쪼개 없애버린다는, 자기의 치욕(恥辱)으로 여긴다. 바보짓을 한다고 분노 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보짓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실은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 부터 바보취급당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도록 만들어졌다. 이것이 또 재미있는 데, 인간이 한편으로는 기쁨을 찾지만 게으르고 싶은 성질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는 자연은 일을 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지는 것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도록 만들어놓았다.
다른 사람에게 모욕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모욕당해도 별 수 없다고 체념해버리는 게으름뱅이거나 무능력자다. 이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으로 받는 이해되지 않는 모욕을 모욕이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강한 인간이다. 즉 모욕(侮辱)그이하의 인간이거나 이를 초월(超越)하는 모욕(侮辱)이상의 사람이든가 하는 것이다.
얘기는 이것인데,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일은 무엇인가에 도움이 되는 일일 필요가 있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