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道德)이 인간에게 최상(最上)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배력은 갖고 있다. 인간에게 보다 올바른 명령권을 갖고 있는 것이 도덕이다. 도덕이상의 인간도 존재한다. 적어도 도덕이상으로 사는 순간적 인간은 수두룩하게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또한 도덕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기의 부정(不正)을 알았을 때는 이를 바로 고쳐야 하는 것이다.
도덕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인간 세상에만 있다. 인간이하의 동물에는 도덕심이란 없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상의 다른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 거기에는 도덕이란 불필요하다고 본다.
자연이 시키는 대로 하고 그때그때의 충동(衝動)으로 움직이는 것 외에 다른 능력이 없는 것에는 도덕이 없다. 보다 나은 쪽으로 행할 능력이 없는 것에도 도덕은 필요하지 않다. 보다 나쁜 짓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에도 도덕은 필요치 않다. 바로 인간이라야 도덕의 지배를 받게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인간 속에는 진정한 도덕으로 지배돼서 살아가는 사람은 실로 드물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은 그렇게 완전하지도 않은 도덕을 끊어내지 못하고 지배되어 사는 것이다.
아무튼 도덕심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것에 지배되어 살아갈 때 그 사람은 권위(權威)를 자기 안에서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自然)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도덕을 중히 하는 것은 사는 보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도덕을 외면하면 왠지 기(氣)가 끊어지면서 자기 마음이나 행동에 하늘 을 우러러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기운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기분으로 살고 싶으면 도덕에 따라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는 뻔뻔스런 사람도 많다. 낯 두꺼운 사람도 많다. 그래도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하지마라. 한 사람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사람에게서 진정한 권위는 생겨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그 사람의 말에 권위가 있으려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건 도덕심에서 할 때에 한해서 있는 것이다.
진실한 도덕가는 그만한 힘이 있다. 만약 그런 힘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입으로만 외치는 사이비도덕가(似而非道德家)로서 늑대의 탈을 쓰고 있는 데 지나지 않다. 그런 사람은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에 도덕의 진의(眞意)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도덕의 진의(眞意)는 인류가 바르게 가야할 길로 찾아 들게 하고,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하기위해서 있는 것이다. 헤매는 사람에게 그 잘못을 알려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명하는 것이 도덕인 것이다.
도덕은 인류가 그들 생활 속에서 잘못된 길을 걷는 일 이 많아서, 곧 멸망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고, 바른 자세로 전진(前進)할 것을 명령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준 것이다.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명령에 쫓은 사람은 인생의 진면목(眞面目)이 엄숙해야 함을 느끼면서 바짝 다잡은 기분으로 다시 살아가는 길을 걸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도덕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얼마든지 타락의 길에서 바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결심을 새롭게 할 수가 있으며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 또한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인간이 아무렇게나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자연은 인류가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서 생장(生長)할 것을 바라고, 또한 모든 인간이 본래의 모습으로 존중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인간들은 결코 협력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며 서로서로 존중하지도 않는다. 이해관계로 충돌하고 경멸하고 질투하고 또 서로 냉담하고 싸울 트집을 만들어서 달려들기까지 한다. 그러니 인류는 서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서로서로 망해서 끝낼 것이다. 그러면 인간에게 준 이런 저런 귀한 것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망해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인류는 생장(生長)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을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의 생장을 바라는 자연이 기뻐할 리가 없다. 여기서 무엇인가 그런 무서운 결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한 필요한 것을 만들 필요가 있게 된다. 우리들에게 도덕심이 주어진 것은 그것 때문이고 인간이 바른 자세로 옳게 생장시키기 위해서 온전한 그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 도덕인 것이다.
지금 세상에 도덕심 같은 것은 있어도 힘이 없다고 하면서 경멸하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사실이다. ‘덕(德)을 사랑하기를 색(色)을 사랑함과 같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겠구나!’ 는 것은 공자의 탄식만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도덕의 힘은 약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 남기위해서 진심으로 도덕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동물적으로 지배하려면 폭력이면 충분하다. 또 우리를 유혹적으로 지배하기에는 금전 또는 여색(女色)이 보다 강력한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이성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지배하려고 하면 도덕의 힘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도덕은 우리의 잘못을 근본적으로 알려주고 우리를 점점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힘은 미약하게 보이지만 근본적이고 이성적이고 인간적이다.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싶다면 도덕의 감화력(感化力)을 경멸하겠지만 인간이 점점 인간답게 되기를 바란다면 도덕의 힘을 무시하고서는 안 된다.
이토록 도덕은 인간을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기위해서 있는 것이지 인간을 삐뚤어지게 하기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지배하기위해서 있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기에 다른 사람을 제재하기위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부도덕한 사람은 원래 비난받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실 좀처럼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힐책(詰責)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무반성(無反省)한 부덕한(不德漢)이다. 반성할 줄 아는 부덕한(不德漢)은 자기의 죄가 다른 사람보다는 무거운 것을 안다. 그래서 자기를 조금이라도 성실하게 하려고 한다. 자기의 마음가짐을 고친다. 생활을 개선하기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려 하고 자기의 게으른 마음을 눌러 이긴다. 미물(微物)같은 자기 마음가짐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불쾌한 눈으로 보기를 그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씩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쁜 짓을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려고 마음을 다질 것이다.
자기 것은 선반위에 얹어놓고 다른 사람의 것만 가지고 비난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이 생명조차 품행을 나쁘게 하여 다루기 곤란하게 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의 생명의 세상살이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도덕의 힘은 마음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서 영향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부도덕을 조장하거나 부도덕하도록 변호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물론 좋지 않으나 부도덕한 것은 반성토록 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그 부도덕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을 때는 모른 척 하는 것이 좋은 때도 있다. 보기에도 민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보게 된 것에 시새움이 있어서는 좋다고 할 수 없다. 자기의 마음에 비열(卑劣)한 데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뿐이다. 진정 그 사람의 본래의 생명을 사랑하고 자기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때, 주의를 주어야 할 데 주이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라나 부질없이 무심하게 하는 것은 덕을 덕스럽게 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좋은 일이 아니다.
도덕은 상대가 지당하다고 생각할 때에 그 효과가 더해진다. 나빴다고 여길 때에 실효가 나타난다. 형별로 제재함에서도 정말 내가 잘 못했다며 이만큼 의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을 때,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반성할 때, 재생(再生)의 길로 들어서지만 벌이 두려워서 억지로 굴종(屈從)했다면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구(救)해졌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도독적인 사회는 아니다. 해서 일컫는 성공(成功)자는 도덕적인 성공(成功)자는 아니다. 돈을 모으는 데 이골이 난사람이거나 출세의 달인이거나 운이 좋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위해서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 세상적 성공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진정 도덕적으로 지배 되는 이는, 어딘가 권위가 있어서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 격조를 높여주고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할 것이다.
진정한 도덕심(道德心)이란 우리의 생명을 바르게 살도록 하기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쫓아서 사는 이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힘을 갖고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마라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마라. 욕망을 병적으로 키우지 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제일이다. 등등.
결국 도덕은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되어 올바르게 생장(生長)해 나가는 데 필요한 길이므로, 여기에서 벗어나면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무서운 일이 생길 위험성도 있다.
그래서 마음가짐도 다르게 하고 생활도 다르게 하면, 자연은 그런 사람의 생명을 그 순간은 긍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사람도 자연과 자기의 생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자연에 긍정(肯定) 받지 못하면서 자기(自己)면허(免許)로 자기의 생명을 긍정하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무리(無理)인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