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음이 두렵다고 한다. 인간은 좀처럼 지금 죽어도 좋다는 때와 마주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함을 슬기롭다고 할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또한 슬기롭지 못하다. 생명은 할 수 있는 한 중히 여겨야한다.
인간이 아무리 두려워해도 죽어야 할 때는 죽고, 죽지 않아야 할 때는 죽지 않는다. 인간은 죽을 때가 될 때 까지는 죽지 않는다. 그래서 죽었을 때는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그 때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죽을 때까지, 결국 살아 있는 한은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 할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며 죄를 범하는 일을 되도록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살아버린 것을 끙끙거리고 고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쓸데없는 짓이다. 후회는 앞으로의 일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지나간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녕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보다 깊은 생명의 의지(意志)를 아는 이는, 그런 사람은 회개(悔改)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지난 일을 바로잡기를 게을리 하지마라라.”고 말한다.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결심하고, 나날이 새롭게 되어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되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한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변하기 쉬우므로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이 유감이다.
그대들은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 나쁘다고 생각될 때, 솔직히 자기의 나쁜 점을 고쳐서 죄 값으로 하여 더욱 다른 사람에는 관대(寬大)하고 친절하며 자기에게는 보다 엄격하게 노력할 뿐이다.
죽으면 이미 이런 의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생장(生長)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번민이나 고통에서도 해방된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이를 견디어 이겨내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이 승리의 월계관을 장식하는 한 잎의 월계수 잎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에 지면 끝장이다. 혼자서 못 이길 성싶으면 친구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좋은 친구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가 우선하여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얻고자한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상대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이쪽의 사랑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마음이 돈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꽃을 보고서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팔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니, 우정으로 치자면 이 우정을 얻음으로써 얼마나 득이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좋은 친구로 될 까닭은 없다. 그 때는 친구도 이놈과 단짝이 되면 얼마가 덕이 될까를 생각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자기가 되돌려 받는 경우가 뜻밖에 많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해 보인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