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확실히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다. 이에 대해서 앞서 조금 언급한 바가 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좋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나쁜가? 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않다고 하고 싶다.
정치를 하는 일도 원래는 나쁜 일은 아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 다. 그래서 좋은 정치가는 정말로 자기의 일생을 국민에게 바치고자 낮이나 밤이나 국민을 위해 생각하고 사랑하고 행복으로 이끌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그래도 자기의 힘이 모자란다고 통감하며 열심히 공부도 하고 궁리도 하고 국민의 충언도 들으면서 이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지성으로 국민을 받드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총명할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며 국민을 위해서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나쁜 정치가는 야심으로 가득차서 자기출세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이용해도 된다고 마음먹고, 자기의 생명은 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명은 자기 이익 앞에는 아무 문제도 안 되고, 마냥 입신출세의 기회만 노리고서 세력을 뻗칠 것만 생각한다. 그런 정치가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정치가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같은 일을 좋은 쪽으로 쓰는 이가 있는가하면 나쁜 쪽으로 쓰는 이도 있다. 한편, 의사에 대해서는 앞서도 썼지만 인술이라면서도 돈 때문에 몹쓸 짓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와 반대로 기생이나 작부와 같이 남자의 육욕(肉慾)을 자극하여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천한 직업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도 인생에 실망하고 자기 포기에 들어간 남자들을 용기를 주어서 다시 힘차게 살아가도록 하는 여자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 경우에 그 여자는 훌륭하다고 하겠다.
귀부인에도 훌륭히 바깥 분을 도우면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기에겐 아무런 지위도 없으면서 마냥 오만(傲慢)불손(不遜)하고 뜻있는 사람들에게 경멸받는 사람도 있다. 또 그 이상으로 남편이나 다른 남자를 타락시키는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직업만으로 그 사람의 귀천과 선악을 간단히 정할 까닭이 되지 못한다. 직업의 선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대개 돈을 버는 직업이다. 이는 쓸어서 이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상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하면 할수록 자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생명(生命)적인 것이어야 한다. 곧 일하면 할수록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전하게 만족되는, 그런 일이라야 한다.
오늘날엔 그런 일을 찾기가 한층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건전한 사회가 되어서 그 사회에서 장려(獎勵)되는 일을 한다면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 좋고, 동시에 머리가 맑아 품성해지고 좋아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게 될 것이다. 자기의 생명을 향상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도 향상시키는, 그런 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협력하고 연구하고 노동하면서 인간을 위한 일을 함으로서 돈이 벌리는 것이다.
어떤 학문이라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직업에 종사한다는 존칭이 주어지리라고 생각된다.
좋은 직업이란 결국 협력하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 자기의 재능이나 취미와 딱 들어맞는 직업, 다른 사람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돈 모으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말하는 “누구에게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란 바보들의 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돈을 생각하지 않고 일만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의사의 예를 들면, 부자환자를 맞으려는 다툼 같은 게 있는 데 돈 벌기 위해서는 그런 신경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돈을 생각하지 않으면 병을 낫게 하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되어 어떤 환자건 좋게 맞아들이고, 낫게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한 사람의 의사가 몇 사람의 환자를 낫게 했기 때문에 다른 의사의 일거리가 없어졌다고 할 까닭이 없다. 고쳐주면 줄수록 다른 사람은 기쁨으로 돌아올 따름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나의 공부가 다른 사람의 공부를 방해 하지는 않는다. 내 밭을 잘 가꾸는 것이 다른 사람의 밭이 잘 못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직업에 충실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직업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 자연의 의지(意志)인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이란 것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허용함으로서 무한정(無限定)의 생물(生物)을 낳아서 먹을 것을 충분하게 해 주지 않는다. 이 먹을거리도 먹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의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인간의 경우에도 서로 자기를 진솔하게 살리기 위해서는 충돌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함에도 그렇게 만들지를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협력이 되어서 결코 자기를 바르게 사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압박(壓迫)할 필요가 없도록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인간이 아직 충분하게 생장(生長)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사회가 아직 이런 병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시대는 우리들이 자기의 욕망을 확장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전(健全)으로의 자기삶이 다른 사람의 자기건전(健全)의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의 희망 건전사회는 모든 사람이 바르게 일할 수 있도록 되어서, 모든 사람이 바르게 일하면서, 문명도 차츰 진보해서 인간도 점점 행복해지는 세상인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아직 상당히 어려운 노동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런 노동은 특히 신체의 건강이나 희생적 적신이 앞서는 남자를 받아 들이고 있다 그 대신 이런 노동은 명예로운 노동으로 되어 사회에서 우대 받는 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상세히 여기에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가 오면 나보다도 그 방면에 자상한 사람이 더 잘 이런 점을 처리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생명을 뜻있게 하자는 것인데, 곧 사람들이 사는 보람을 느끼도록 하면서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건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점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인간을 건전하게 하지 못하고 병적인 사람으로 되기 쉽게 한다는 것을 주의시키고 싶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가하면 살기 위해서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면 일을 하기위해서다. 그 일이란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 국가의 일원으로서 시비(是非)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이다. 그 일만이라고 하면 살 수 있는 돈 정도는 들어온다.
즉 의무를 다하면 저절로 상응하는 돈이 들어오고, 돈이 들어오면 또 안심하고 의무를 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여가를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이 싫어하지 않게 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옳은 욕망은 될 수 있으면 채워졌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혹(迷惑)하거나 다른 삶을 불행하게 하거나 다른 삶의 독립성마저 흠집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의무를 다함으로서 얻는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탐나는 것이 있으면 동료들과 협력해서 여가를 만들고 그 여가에 돈을 벌어서 살 수 있도록 힘을 써야한다. 하지만 건강만을 위한 생활아리면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여 일하거나 고용(雇傭)당한다면 이는 끝이 없게 되고 이것으로 됐다고 할 때는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판로(販路)를 빼앗을 필요를 느낀다.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적당함을 알지 못하게 되어 정신을 잃게 되므로 이런 저런 책략도 필요로 한다. 거짓과 선전과 상대의 험담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공영(共榮),공존(共存),공생(共生)이란 말이 공염불(空念佛)로 되는 것이다.
자기 가치의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는 상대의 가치를 떨어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인간이 진보 되는 것이다. 또 필요하고 유용한 물건을 발명하는 것도 훌륭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문명이 진보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좋은 것이 보다 쉽게 팔려나가게 되면 그 상품에 지는 상품을 팔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실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보다 좋은 물것을 만들기를 장려 하고 지금까지의 물품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물건을 만들도록 전업(轉業)시킨다면 별도의 실업자는 나오지 않고 국민은 득(得)이 있을지언정 손해는 없을 것이다. 헌데 이것도 돈 벌이를 주로 하는 상업 본위의 세상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것을 발명하드래도 그것이 시장에 나오면 자기들이 손해를 본다며 좋은 상품을 햇빛을 보지도 못하도록 대중운동까지도 한다.
전혀 인간본위가 아니고 금전본위의 이 세상은 자연의 의지(意志)에 역행(逆行)하며 인간과 인간을 싸움 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무서울 뿐이다.
언제 사람들이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생명에 충실하게 되겠는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국민 전체가 협력해서 국민전체를 살리고 그리고 다른 나라 국민과 이웃하여 사이좋게 서로 도우면서 오가게 되는 때는 언제 이루어질 얘기인가?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