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우선 자기를 보살피고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데, 이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또 에고이즘도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 사회를 위한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자기 하나도 주체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미혹(迷惑)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때로는 있지만 이런 사람은 점점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서 배척(排斥)당한다. 인간은 자기만을 가까스로 살려가면서도 사는 동안에는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일까지 손을 줄 수가 없으며 책임도 또한 없다.
그러나 자기의 가족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가족은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단위이기 때문에 이 가족 단위에 대해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을 미혹(迷惑)하지 말고 자기와 가족을 훌륭히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런 저런 이유가 있고, 인간의 일이기 때문에 누가 죽지 안 는다고 할 수는 없다. 일해야 할 처지에서 죽었다면 어느 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가정도 있으리라. 그런 가정은 나라에서 담당관을 두어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할 수 있는 젊은이가 있고, 책임을 지고 가정을 꾸릴 사람은 자기의 처자식의 일이고, 또는 자기의 남편이나 자식의 일이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만 사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좁혀서는 가족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소단위의 사회인 까닭이다.
효자를 칭찬하는 것은 그 가정의 무거운 짐을 어버이를 대신해서 스스로 짊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이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 특히 소년소녀로서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것은 안쓰럽지만 칭찬할 만한 일이다.
가정을 잘 꾸려간다는 것은 자녀를 잘 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전한 가정은 국가의 기둥이고 인류의 생장(生長)에 그 몫을 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만치 인류의 생장에 기여(寄與)하는 것은 없다.
때문에 연애라든가 모성애라든가 아버지의 사랑이라든지 하는 것을 주어서, 자연은 빈틈없는 새사람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차면 혼자로는 차분하게 안정되지 못하고 좋은 상대를 찾아서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마음먹게 하는 것이 자연의 의지(意志)인 것이다.
단지 선택된 사람은 특별한 일을 위해서 독신으로 있는 것을 혀용하고 보다 훌륭한 일을 하도록 명받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좋은 가정을 꾸려서 인생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또한 인생의 마감을 축복하는 것이다.
부부의 조화나 돈독한 우정도 이와 같이 양쪽의 희생 없는 조화가 가장 바람직하다. 해서 사기적(詐欺的)결혼은 그다지 좋다고 할할 수 없다.
재산상의 사기는 법률상 죄인으로 되지만 생명의 사기인 속임수 결혼은, 그것이 이중결혼이거나 소위 결혼사기라면 벌할 수 있지만, 정말 서로가 모르고 속아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며버리면 벌할 수 없다. 그로 인하여 눈물로 밤을 새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양쪽이 서로 속임수의 배가 맞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너무 시끄럽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어떻던 주의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책임한 중매인은 몸을 삼갈 필요가 있으며, 당사자들은 그의 입발림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필요하고, 더구나 반해버릴 지경일 때는 더욱이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자의 경유에는 남자의 성욕과 연애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남자의 성욕을 연애로 착각하고 몸을 맡기고 난 뒤 나중에 버림 받고서 일생을 허무하게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성욕은 상대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는다. 가지고 놀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자기의 인격을 낮추는 일조차 쉽사리 한다. 연애는 인격을 높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연애는 남자를 천박하게 만들지 않는다. 책임을 질 수 없는 일을 쉽게 하지 않을뿐더러 부끄러움을 안다.
여자가 남자의 성욕을 열렬한 연애의 표현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을 보면 도금한 금붙이를 순금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서 참으로 안쓰럽고 바보스럽다. 신용할 수 있는 사람과 상담(相談)해 볼 일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