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일과 자기의 시간과 자기의 생명을 우선하여 중하게 여김이 당연하겠지만, 중히 여긴다고 하여서 제멋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해서도 안 되고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기 때문이고 자기를 참되게 살아가게 하는 사람도 자기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앉거나 눕거나 서게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아무리 사랑하드래도 다른 사람인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뜻대로 남을 이렇게 저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차할 때도 남이 자기의 뜻 때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다른 사람과 의논해서 의사결정(意思決定)을 해야 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을 갖고 있으며, 시간도 그 사람의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일은 그 사람에게 맡겨놓음이 옳고, 자기는 자기의 일생을 통하여 책임도 져야함은 물론이고 자기를 제대로 다스려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드래도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을 제일 잘 듣고 충실히 이행할 사람은 자기 이외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신용하지 못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신용의 방법은 다른 사람은 역시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기초가 허용되는 한에서 신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신용할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은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구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한다는 것은 잘못의 으뜸이므로 인간은 신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어느 정도의 이기적인 면이 있음은 당연하다. 아무리 우정이 두터워도, 아무리 충성심이 강하다고 하드래도 내 몸 귀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육체의 고통이 다른 사람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의 생명에 되도록 충실해 지려고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휘어잡으려고 하는 것은 휘어잡으려고 하는 쪽의 잘못이다. 이때에 다른 사람이 휘지 않았다면서 불평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우정의 가치는 서로의 독립성에 상처를 주지 않고 사귀어야 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서로서로 자기를 속이고 사귄 사이라면 그 우정은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자아(自我)를 지키고 꾸려감으로서 점점 신뢰를 쌓게 되여 존경되는 데에서 아름다운 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있어서 희생적으로 서로를 도울,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잊고 돕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일이 났을 때다. 제대로 된 끊임없는 우정은 서로가 자기를 망가뜨리지 않고 자기가 확신한대로 살면서, 자기가 좋다고 하는 길을 각자 걸어가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진정한 우정인 것이다.
갑(甲)이 7활로 자기의 자아(自我)의 길을 걸으면 을(乙)은 3할 밖에 자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을은 3할의 자아를 견디어내며 갑은 7할의 자아를 느긋이 걸으니 그래서 우정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그 우정은 바보스런 우정인 것이다.
그러나 우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정은 갑은 10할로 자기를 가꿔가고 을도 10할의 자기를 가꾸면서 사귀어 간다면, 이것으로 그 우정이 점점 두터워짐으로 해서 그 우정이 재미도 있고 또한 가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