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은 담백(淡白)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상대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랑은 만인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 사랑이 순수하게 될 때에 천하에 적이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은 인류의 생장(生長)을 위해서 어떤 역할(役割)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을 사랑하고 도덕을 사랑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사랑은 일생동안 만족될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랑을 뿜어낼 때 그 사람에게서 권위가 생긴다.
그 다음에. 인간은 우주와 조화(調和)할 필요가 있다.
이 조화를 위해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도록 지어졌다.이런 모든 사랑이 우러나올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이 기쁨은 단순한 사랑처럼 자극도 강하다. 그러나 이는 시간적으로는 짧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멀리할 필요는 없지만 보다 높고 보다 깊고 보다 넓은 사랑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모든 사랑을 조화롭게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불멸의 사랑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토록 언제나 마음의 준비가 된 이에게는 평안이 있을 것이다.
현자(賢者)나 성인은 뒤의 방법의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앞의 방법의 사랑은 그들에게는 불안이 지나치고 또 우연치 않게 또 다른 사람과 충돌하기 쉬운 두려움이 있음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육체를 갖고 사는 우리로서는 앞의 방법의 사랑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분수에 걸맞게 살아가는 데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뒤의 방법인, 사랑도 제대로 하여서 그로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안심에 의하여 몸을 천명에 맡기고 생사 이해에 당면하여 태연하게 될 것이다. 앞의 즐거움이 다가오면 거절하지 말고, 떠나는 것을 잡지 않는, 그런 각오가 되어야 한다. 혹 일시적으로 헤매더라도.
위리는 사랑을 부정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과 어울릴 수는 없다. 이는 사는 즐거움을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서 모두 없애 버리는 것과 같다.
사람으로부터사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빼앗지 마라라. 우리의 삶이 즐거움만 있지는않다. 그래서 사는 즐거움을 사람에게 주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사람살려가는 길이다.
인간에게서 사는 즐거움을 앗아서 합리적인 사회가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인간을 기계(器械)로 다루는 것이다. 사는 즐거움을 사람들로부터 빼앗는 경향이 있는 사회는 증오(憎惡)해야 할 사회다.
사람마다에 사는 즐거움을 주어라. 그러려면 사람사람이 사랑할 대상을 갖고 그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여지(餘地)를, 되도록 많이 주어야 한다.
어린이를 어버이이 손에서 떼어내고, 사랑하는 이의 손에서 때어내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회는 아무리 평등하고 공평하게 행하여도 따져보면 어름장같이 차가운 세상이다.
우리들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바란다. 사랑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알지 못한다.또한 사랑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랑이 있는가하면아무리 가치가 큰 사랑이라 해도 다른 한 면을 갖는 사랑도 있다. 이런 사랑은 불안이고 질투에 불타기 쉽고 성내고 변하기 쉽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진리나 아름다움이나 신(神)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사랑하기 때문에미워할 수 가 없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