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말이 빗나가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지상에서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하나다. 이를 높이 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미애비는 없어도 자식은 자란다는 말이 있다. 열 자식을 두고서 다섯 자식을 길렀어도 기른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고서는 빗나가는 자식이 바르게 된 일은 없는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버린 자식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으면 길러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머니를 일찍 잃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에 어머니가 없으면 자식을 기를 수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드래도 어머니의 사랑은 존경되어야한다.
어머니로서는 자녀가 제대로 다 자라만 준다면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그 것만으로도 사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두고 하는 어버이의 은혜도 사실이며 자식을 두고 하는 자녀의 은혜도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식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성급한 생각이다. 짐승으로서 눈(目)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은 어머니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당연시하는 깊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를 그 사람으로는 알지 못할 것이다. 나도 모른다. 그냥 모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점점 그에 대한 무한한 의지를 알아보고 싶을 뿐이다.
어버이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려면 자식이 병을 앓고 있을 때 보면 알 수 있다. 자식이 죽으면 더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아볼 수 있다. 자연은 어머니에게 자식을 어디까지나 훌륭히 키우도록 명하고, 한없는 사랑의 힘을 어버이에게 주었다.
때문에 자식에게 죽임을 당해도 어버이는 견디어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을 살릴 수 있는 한 살리려고 하는 것이지 죽어버린 자식에게 미련을 갖도록 하기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같은 것이니 불상한 부모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 중에도 자연의 의지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그에 지배되어 있는 것이다. 왜 자연이 이토록 심각한 감정을 인간에게 불어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런 감정에 지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사람은 좋은 자녀가 태어나기를 바라고 훌륭하게 커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연이 바라는 대로 좋은 자식을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어머니의 최고의 보람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가 훌륭한 인간일 것과, 좋은 남자를 고르는 것이 필요하다. 유전법칙은 바보로는 되지 않는다. 물론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인간의 합침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기 때문에 같은 유전법칙에 쫓아 태어난 자식이라 하드래도 형제자매의 성질이 전혀 다른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좋은 사람 사이, 특히 외모가 좋은 사람 사이에 좋지 못한 자식이 생겨나거나 외모가 보잘 것 없는 사람 사이에도 훌륭한 자녀가 태어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요순(堯舜)임금의 자식이 성인(聖人)이 된다고 말 할 수 없고, 우(禹)나라임금의 아버지가 반드시 현자라고 정할 수는 없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