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기 위해서, 인간의 방자함을 될 수 있는 한 외면하는 일은 농사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세상일치고는 바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생명의 필수품을 생산하는 일이야 말로 훌륭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정신과 육체를 쌀의 연구로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이,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정진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일을 하면서 많은 농민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일이 어떤 일이 좋고 어떤 일이 좋지 않은 일인지 설명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웬만큼은 이미 썼다. 지금 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은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로 해결하려고 해도 그 논리만으로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점점 더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배가 고팠을 때에 어떤 음식에 아무리 높은 칼로리가, 아무리 많이 들어 있다는 말을 들어도 고픈 배가 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인간은 이 세상에 그럴듯한 논리로만 얼버무리려고 온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기 위해서 온 것이다. 산다는 것은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일한다함은 무의미하게 사라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큼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배울 때는 본심으로 배울 일이다. 또한 자기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데 까지 단련할 일이다. 건강이 첫 째지만 그 건강이 목적일 수 없다. 하지만 자기 일생을 되도록 유익하게 살려가기 위해서는 건강을 중히 여겨야 한다. (중략)
빨리 유명해지려고 한다든지 빨리 성공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최후의 성공을 위해서 틀림없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대들이 훌륭한 젊은이로 된다면 그대들을 감싸고 있는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만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자손들을 두어서 이어가는 것도 그대들의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실연(失戀)했다면서 움츠리는 것은 꼴사납다. 고통이나 슬픔이 크면 클수록 그 것이 그대들을 시련(試鍊)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시련이 고통스러우면 그 고통만이, 참고 견디어 이김으로서 다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행복을 거머쥐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불행 또한 속이지 마라. 정면으로 견디어 나아가는 것만이 젊은이답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