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인간의 최후는 사멸이다. 왜냐하면 자기라는 것은 반드시 죽어 없어지는 것이기에 자기가 아무리 자기를 아끼고 자기 본위로 산다 하드래도 행과 불행의 눈으로 보이고, 아무 탈 없이 살다 병으로 죽어 가드래도 최후에는 죽어 없어진다. 사랑만이 죽음을 처 부순다. 처부셨다고 하기에는 좀 지나치지만, 사랑만이 사멸에서 해방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죽음이 최후가 아닌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한다. 자기가 죽을 때도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자식의 생명이 자기의 생명보다 중하게 되는 때 본인의 죽음, 그 어머니에게는 끝이 아닌 것이다.
또 아직 나에게 일이 있고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일을 완성하겠다고 마음을 다지면서 살고, 다행스럽게 그 일을 완성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그 사람의 사멸을 의미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자기일 속에서 묻혀 살아갈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것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멍청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마지막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뒤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자기 일생으로 만사가 끄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결국 염세적(厭世的)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공허한 것에 자기를 맡겼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이 자신만을 삶의 목적으로 한다면 결국 이와 크게 다를 바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개인도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죽어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멸하지 않는 데에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만 한다.
죽어 없어지지 않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이고 아름다움이다.
위리는 그저 지어진대로 살아갈 뿐이다.
이렇게 말해도 확실하지 않을 것이다. 차차 여러 방면으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가를 살펴보려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