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자식을 어버이가 만들었다고 하는 바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버이가 없다면 자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가 자식을 만들, 그 능력을 인간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양친은 더욱 아니다. 또 성욕 없이 자식은 생기지 않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성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고 자연이다. 자연은 자식의 전신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아버지를 자극하여 성욕을 일으키고 태어나려고 하면서 그 몇 억분의 일, 또는 몇 만 몇 천 만분의 하나가 태어나도록 허락된 것이다.
생겨난 것은 실로 적은 숫자다. 그러나 어버이가 자식을 낳고 싶어서 자식을 낳은 것보다 오히려 자식이 태어나고 싶어서 어버이를 움직였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쯤은 사실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자식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데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것은 거기에 조금도 보탬을 주지 못했다. 단지 자연에 순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연이 만들어 놓은 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가를 증명해 내는 것은, 우리로서는 퍽 즐거운 일이다.
예를 들어 신경을 인간의 몸에 빠뜨리지 않고 짜 넣은 것은 누군가? 말할 필요 없이 자연이다. 인간은 신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신경이 있다 하드래도 그것을 감지하는 기관이 없으면 느낄 수 없다. 여기서 인간의 생리를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 되지도 않는다. 이 문제를 연구하려는 사람에게 다른 적당한 책이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자연에 의해서 만들진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자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자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통을 느끼게 하는 능력은 자기에게는 없다. 없다고 하는 것이 지나치다면, 이런 신경을 짜 넣지 않고서 우리의 신체를 만들었을 때에 아픔을 느끼려고 해도 신경이 없으므로 아픔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치아의 신경을 없애버리면 치통을 느끼지 못한다.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잘라도 아프지 않는 것은 신경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손톱 발톱 머리칼이나 몸의 터럭을 잘라내면서 아픔을 느끼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경이 아픔을 전달하는데 이를 피하려고 해도 이는 되지 않는다. 특수한 병이나 심리 상태일 때 이 고통을 느끼는 기관이 무신경으로 되면 아픔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지만 그것은 보통상태는 아니다. 해서 자기가 아픔을 느낀다고 하기보다는 느낌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신경이 없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명은 자기에 필요한 것을 낳았다.
신경의 활동은 갖가지가 있다. 수동적인 것, 능동적인 것이 있다. 나는 인간에게 주어진 이런 것들이 제일 싫은 것이다. 육체의 고통에 대해서 우선 생각해보고 싶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