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두려움은 그 사람이 아직 자기를 제대로 사려가지 않기 때문이기에, 자기의 남은 힘을 다하여 이 땅위에서 하려고 생각했던 것을 충실하게 해 나가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에 그 사람의 모든 힘이 부어넣으면 그 사람은 살 보람을 느끼고 함께 죽음의 보람도 느끼게 된다.
온전한 생명으로 살아간 삶일수록 온전한 왕생(往生)이 이루어지고, 온전한 생명을 살리지 못한 주제에 온전한 왕생(往生)을 이루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리(無理)인 것이다.
우리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을 정도의 생활을 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죽음의 공포를 초월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는 표시도 되는 것이다.
즉 살아 있어도 된다는 허락과 함께 올바르게 하도록 하고, “그대의 생활은 아직 진솔하지 않고, 게으르고, 성의가 부족하고, 힘을 다하지 않고, 일의 깊숙한 곳까지 걸맞게 되어있지 않음”을 이르며 이를 죽음의 공포로 나타내는 것이다. “마음가짐도 정말 잘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살아 있을 때 이 일만큼은 하고 싶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마칠 때까지는 생명이 소중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마쳐지면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다. 지금 죽어버리면 부끄러움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힘을 쏟아냈다면 팔을 벌려 죽음으로 나아가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좀처럼 그런 경우로 되지 않음을 또한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죽음의 공포가 싫지만 그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불복(不服)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또한 이 땅위에서 자기의 생활 중에 하여야 할 일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무거운 모든 짐을 내려놓았을 때 죽음이 허락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