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샘에서 곧추 생명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솟아나고 있다. 이 힘에 의해서 사람은 태어나고 살아낸다. 그리고 녹초가 되도록 이 땅위에서 싸워 나아가다가 힘이 빠져 쓰러지면 남은 사람에게 맡기고 자기는 이 땅위에서 사라지고, 남는 것은 백골(白骨)과 그 사람이 이 땅위에서 해 낸 일뿐이다. 인류는 자기에게 해로웠던 것은 망각의 골짝에다 묻어버리고 만다. 세 개의 십자가에 달린 사나이들이었지만 인류는 그리스도만을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살다 죽어간 사람들을 모두 다 기억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면 이 또한 크나 큰 변이다. 잊혀도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실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이름은 잊혔지만 그 사람이 한 일이 잊히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그대의 한 몸을 만들어낸 이의 이름은 모두 잊고 있을 것이다. 양친의 이름이나 할아버지의 이름 또 그 위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기억할 지도 모르지만.
밀로의 비너스를 만든 남자는 누군가! 이름은 모르지만 작품은 빛나고 있다. 그 작자(作者)에 영향을 준 사람들과 그 작자가 태어나기까지의 사람들은 어디엔가 사라졌지만 무의미하게 사라졌다고는 하지 않는다.
훌륭한 작자의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그 작자의 모든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이 있는가!
레오날드다빈치. 이런 고독한 남아가 어디에 있는가!
많은 무리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파초(芭蕉)의 마음을 참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몇이나 될까! 파초가 고독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고독은 인간의 운명이다. 불평은 과분한 짓이다. 그런 그에게 무엇인가 다가와서 다독이고 있다.
그대는 자연이 불가사의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여기서 간절히 말하고 싶은 것은, 자연이 불가사의한 것이지만 인간이 얼마나 이 불가사의에 익숙해져 있는지, 어느 만치 불가사의한 것인가를 느끼도록 할 수 가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