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선량한 사람과 동정 받아야 할 사람들이 바르지 못한 일을 하게 됨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르지 못한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경멸함 또한 옳지 못하다. 특히 비난하는 것은 더 옳지 못하다. 그런 사람은 위선자이고, 바리사이들이고, 저우(樗牛)에 의해서 비난받은 도학자이고, 더욱이 반성 없고 생각이 없는, 자기 결점을 모르고 다른 사람의 결점만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말에는 감명을 받을 수 없다.
간부(姦婦)를 야단치는 그녀가 간부(姦婦)이기도 하고, 도학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허영심 넘치는 여자가 다른 이의 허영심을 입에 담고, 게으름뱅이가 다른 사람의 게으름을 나무라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흥미로운 것이 있다. 서로 용서해주면서 사회적 제재는 행하여지지 않는다. 자기의 일을 반성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의 결점에 마음을 쓰는, 서로 제재(制裁)하려고만 하는 것, 이런 것이 예외적으로 필요한 때도 있겠지만, 자기 것은 선반위에 얹어놓고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꼴불견인 것은 분명하고, 그 사람의 두꺼운 낯가죽 속에 감추어진 검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바르지 못한 일을 하는 직업인을 동정해야함을 잘 헤아려, 경멸만을 일삼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일이 공공연하게 행하여지는 것은 그 사회가 아직 건전하게 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 점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따름이다. 곧 자기도 일원으로 되어 있는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고 또한 자기의 근성(根性)도 건전하지 못함을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것도 너무 얽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어쩜 인간은 어딘가 결점이 있고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그것대로 삼갈 것을 알고, 부끄럼을 알고, 낯 두껍게 행동하지 않도록 하여서 큰일에 힘을 모은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자기의 결점이나 나쁜 점을 과장하는 것은 오히려 병적 양심이지 건강한 양심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자기의 결점과 좋지 않은 점을 알지 못함은 잘못이다. 반성이 없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 그것도 정도껏 가능하리라.
자기의 일을 부정한 데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쓰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바른 일만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보다 나쁜 생활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좋지 않은 일이라도 끝낼 수 없다면 위축 될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이라도 인정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는다면, 바르지 못한 일은 사람의 마음을 점점 바르지 못한 쪽으로 감화시키는 힘을 갖게 한다는 것을 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바르지 못한 일이란 어떤 일인가?
그것은 첫째로는 자기와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다.
둘째로는 자기의 성질을 뭉개는 일이다. 결국엔 원기가 없어지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거짓을 행하고 아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의 성질을 뭉개버리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게으르게 하거나 정직한 일을 하는 사람을 바보처럼 여기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비굴하게 하는 일이다. 또 무심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일도 좋은 짓은 아니다. 종국에는 다른 사람을 실없이 만들거나 볼품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일일이 어떤 일이 나쁜 일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올바른 일은 사람들에게 삶의 즐거움과 용기를 불어 넣을 것임이 틀림없다. 인간은 그렇게 지어졌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일은 인간을 점점 타락시키고 병적으로 만들고 살 용기를 시들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쾌락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건강에 해가 되거나 착하게 일하는 마음을 소모시키는 일도 좋지는 않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