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 애기 때나 어린이 때는 아직 일을 할 수 없다. 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만이 전부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을 하지 않고 출퇴근도 하지 않고 야심의 괴로움도 겪지 않는다. 그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들은 건강만하면 되는 것이다. 갓난 애기들은 특히 아무 탈 없이 지내야 한다. 차차 커가면서 이런 저런 감정이 사로잡히지만 갓난아기는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신체가 건각하게 충실히 자라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기쁨으로 살도록 되어있다고 생각된다.
“ 슬픔보다 기쁨이 깊다” 고 니체가 말했지만 기쁨은 생명의 샘에서 우러나오며, 슬픔과 고통은 그것을 거부하는데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태양이 기쁨만을 주지만 구름이 그 빛을 가릴 때 슬픔과 고통이 생겨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아기는 건강상태가 좋은 때에는 정말 신나게 즐기며 논다. 그러나 울면서 야위어지면 꼭 그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어디가 건강하지 못하든지,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배가 고프다거나 어디가 댕긴다거나 몸이 뒤틀렸다거나 아니면 종기가 났다거나 가렵다거나 등등.
그런데 그 원인이 없어져서 건강상태에 놓이면 애기들은 또 방긋거린다.
커가면서 이런 저런 것이 덧붙여지면서 좀 건강하드래도 울기도하고 슬프기도 한다. (이 문제는 나중에 쓰겠다)
이렇게 건강하면 모든 것이 좋고 팔팔하고 활기에 넘치며 쓸 데 없는 것에는 관심을 안 가진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면서도 건강하다면 차분하게 생을 즐길 수 있다.
‘생각 없이 바라보기’라고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별반 마음 가는 곳 없을 만치 건강하다면 유쾌한 일이다.
정신적(精神的)분자(分子)는 이런 것에 흔들리지 않더라도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건강을 해치려함은 잘못이다.
이렇게, 갓난 애기들에게는 건강이 즐거움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적고 싶은 것은 건강을 되찾을 수 없는 이와 불구의 몸으로 지내는 이다.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한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 때문에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돕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만능일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돌이키려 해도 돌려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건강해지면 일하려고 해도 일 할 수 가없다. 이런 사람은 건강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할 것을 하는 것이 칭찬받을 만 한 경우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목적은 건강이 아니라 지상에서 할 일을 완전하게 해나가는 데 있기 때문에 병을 고치고서 새로이 할 일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그대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훌륭한 것이다. 아니 비장(悲壯)하다고 하겠다.
죽도록 의무를 다한 사람, 죽도록 자기에게 충실한 사람, 죽도록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잊지 않은 사람들은 찬사를 드려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병을 고칠 가망이 있으면 우선 병을 고치고서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불구로 된 사람도 그 불구를 고칠 수 없다면 그대로 비관만 하고 있는 것은 인간답지 않으니 주어지지 않는 것을 체념하고, 주어진 것으로 살아가면 좋을 것이다. 이런 이는 이 점에서는 이제는 더 육체적 고통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쪽 팔을 잃은 사람이라면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고통은 점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낫게 할 가망(可望)이 있는 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고칠 수 없다면 그냥 단념하는 것이 아름답다.
이런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안쓰러운 일이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끙끙 거리는 것은 인정으로서는 동정이 가지만 슬기롭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기화로 그 쓰라린 마음을 걷어내고서 허용되는 법위 안에서 낙천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초인적인 힘을 드러낸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불치의 병자나 불구로 된 사람에게 동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불행을 언제까지나 끌고 가는 사람보다는 힘차게 새로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일을 해나가는 이에게 새로운 감동을 얻는다.
이런 사람은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처럼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큰 감명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