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이야기 하지만, 건강이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아니다. 최초의 조건이다. 해서 건강하면 육체의 아픔은 느끼지 않는다. 건강을 잃을 염려가 없을 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임은 말 할 나위도 없다.
예를 들면, 자식이 건강하지만 탐욕스럽다든지, 연약한 것을 괴롭힌다든지, 이기적이라든지, 게으르다면 이것이 자만(自慢)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불명예(不名譽)가 되는 것이다. 특히 난폭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도벽(盜癖)이 있다면 부모는 많이 걱정할 것이다.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성질이 나쁘다면 좋은 일은 아니다. 칭찬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경멸당하고, 싫어서 피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정도는 있을 것이다.
또한 자기는 물론 남의 건강을 해치는 해위도 나쁘다. 더욱이 육체의 고통은 모두 나쁜 것으로서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말이다. 작은 아픔도 두려워서 피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용기를 잃는다. 그러나 곧 건강을 되찾을 정도의 피로나 귀찮은 것을 두려움 없이, 오히려 인내로 극복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되찾기 힘들 정도까지 간다면 야단이다. 육체의 고통을 참는 것은 인내력을 키우니 높이 살만하다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것은 되풀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건강 다음으로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자기를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이다.
건강하지만 자기 삶을 잘못 이끌어간다면 퍽 잘못된 일이다. 건강하기 때문에 건강을 소홀히 하며 게을러서는 안 된다. 또 건강한데도 게으르게 생활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안 될 일이다. 무엇이든 일을 해야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먹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서 먹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를 건전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육체를 유지하면서 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은 건강이 제일이라면서 이 의미를 왜곡하며 자기의 건강을 목적으로 하여 일하는 사람이 있다. 병자는 건강을 위한 것이 제일의 목적이지만 이것은 배고픈 사람이 배를 채우는 것과 같다. 배불리 먹고 배가 부른 이에게는 먹는 것이 목적이 되지 않는다. 건강하면서도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괭이를 사놓고서 닦아서 광을 내기위해서 샀다고 하는 것과 같다. 괭이로 땅을 파는 것은 어처구니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말로 우스꽝스런 노릇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기의 건강을 해쳐가면서, 더욱이 다른 한사람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노동도 있다. 이런 일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 지금의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올바른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잘못된 것이다. 불합리한 이야기다.
한 사람의 생명을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희생시켜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인간 본래의 생명은 존경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한다는 것은 인간생명을 존중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웃의 생명을 위해서 무언가 도움이 되기 위한 일이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욕망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 말한다면, 부잣집의 하인이나 하녀로써 일할 때도 그 일이 자기를 위한 것, 자기를 사랑하기위한 것으로 한다면 몰아서 나쁘다고 할 수 는 없다. 그러나 부자를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고, 자기를 노예로 만들고 자기를 비열하게 하기위한 일을 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자기를 바르게 살게 하면서 다른 사람도 바르게 살리기 위한 충분한 역할을 하기위해 그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자기도 삐뚤어진 삶을 살아가도록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반이성적(反理性的)인 것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의 지도하에서 일하면서 그 사람을 돕는 것은, 자기혼자서는 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한 역할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돼먹지 않은 사람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귀한 생명을 아무렇게나 굴린 다는 것은 서글프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 세상에는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은 뼈아픈 일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