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움
생명의 의지1.생명이 없는 곳에 진정한 의미는 없다. 우리는 신의존재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전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 또한 믿기지 않는다. 사실 생명이 있고, 우리의 이상(理想)이 있고, 도덕(道德)이 있고, 눈길이 가는 데가 있다. 이러니 우리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종교가 있다. 어떤 종교는 미신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종교심(신앙심)이 주어진 것만은 사실이라면, 이 신앙심은 무엇을 중심으로 하여 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우리를 이끌어가는 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믿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하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은 어떤 것의 존재를 나는 인정한다. 이것은 내게 실감(實感)으로 느낀다. 위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돌보며 이끌어가는 이는 결국은 무엇인가? 끝까지 따져보면 무엇에 귀결되는가? 우리의 본심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구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영(零:zero )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명예(名譽)는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공평하지도 않다. 늘 틀림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곧잘 올바른 사람이 오해되기도 하고 험담을 듣기도 한다. 위선자(僞善者)가 진실한 사람보다 칭찬받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공평(公平)하기도 하고 정당(政堂)하기도 하자만 동시에 그렇게만 믿기는 불안도 하려니와 납득되지 않는 점도 있다. 나는 칭찬을 받으려고 일하지는 않는다. 또 사람들에게 이해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올바른 것을 쓸 수만 있다면 쓰고 싶다. 인생에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어서 희망은 주는 것을 써두고 싶다. 읽을 사람이 있으리라고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에는 잘 됐다고 생각될만한 것을 쓰고 싶다. 그 무엇인가 라는 것이 인간은 아니다. 신(神)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공통되는 것은 있는 것이다. 나에게 원고를 쓰도록 하는 것, 그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 돈도 아니다. 돈이 목적이라면 써도 좋고 쓰지 않더라도 돈만 생기는 일이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나에게 원고를 쓰도록 한다. 왠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내 마음을 만들어낸, 그 것이다. 말(言)을 낳게 하는 그것이다. 늙은 화가는 힘을 다하여 그림을 그린다. 그는 팔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묘사하지 않고는 견길 수 없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다. 무엇이 그 늙은이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깃인가? 그것은 생명이다. 생명의 원천이다. 새를 지저귀게 하고 나무를 꽃피게 하는, 그것이다. 신(神)이 쓰기로 한다면 내가 쓰는 글은 턱도 없이 못 미치는,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주어진 생명은 나를 통하여 어쨌든 무엇이가를 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다하여 일을 마칠 때 나는 만족한다. 생명은 그저 생명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간단히 지나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불가사의한 것을 있게 하는 그 원동력이 바로 그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없는 곳에 진정한 의미는 없다. 자연에는 의지도 목표도 없다. 하지만 생명에는 의지도 있고 목표도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밑바닥에서 나서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 생명이야말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무샤노고우지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