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張問 (자장문) , 자장이 묻기를,
士何如斯可謂之達矣 (사하여사가위지달의) , ‘선비가 어떻게 하면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고 하니까)
子曰 (자왈) ,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何哉 (하재) ,
‘무슨 뜻인가,
爾所謂達者 (이소위달자) , 그대가 말하는 통달이라는 것이’ (고 하시니)
子張對曰 (자장대왈) , 자장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在邦必聞 (재방필문) , ‘나라에서는 반드시 좋은 평판을 얻고,
在家必聞 (재가필문) , 집에서도 반드시 좋은 평판을 얻는 것입니다.’ (고 하니)
子曰 (자왈) ,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是聞也 (시문야) , ‘그 것은 좋은 평판이고,
非達也 (비달야) , 통달은 아니다,
夫達者 (부달자) , 원래 통달이란,
質直而好義 (질직이호의) , 참으로 정직하고 정의를 즐겨(사랑)하고,
察言而觀色 (찰언이관색) , 사람의 말을 잘 (새겨)생각하며 얼굴(색)을 꿰뚫어보면서,
廬以下人 (려이하인) , 정신을 가다듬어 사람들에 다가감으로써,
在邦必達 (재방필달) , 나라에서 반드시 통달하고,
在家必達 (재가필달) , 집에서도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다.
夫聞者色取仁而行違 (부문자색취인이행위) , 한편, 평판이 좋다함은 윗분에게는 인자하고 착한 것처럼 하고 있지만 실행은 함께 하지 않으며,
居之不疑 (거지불의) , 현재에 (만족하여) 머물면서 의문을 품지 않으며,
在邦必聞 (재방필문) , 나라에서는 반드시 평판이 좋고,
在家必聞 (재가필문) . 집에서도 반드시 평판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다.’ (고 하셨다)
* 徂徠(조래)는 말했다. ‘聞(문)’과 ‘違(위)가 다른 것은, ‘聞’은 명성을 넓히려는 것을 주로 하는 것에 대해서,
‘違’는 도를 행하려고 하는 것을 주로 하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