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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娛樂)에 대해서

 

   생활을 즐길 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술(生活術)’ 이라는 것은 그에 다름 아니다. 이것도 기술(技術)이고 덕(德)인 것이다. 사물(事物) 속에 있으면서, 더욱이 사물에 대해서 자율적(自律的)인 것이 바로 모든 기술(技術)의 본질(本質)인 것이니

 

   생활의 기술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생활 속에 있으면서, 더욱이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생활을 즐긴다는 함은 가능한 것이다.

 

 

   오락(娛樂)이라는 관념은 아마도 근대적인 관념(觀念)일 것이다. 이는 기계기술의 시대의 산물이며 이 시대의 갖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오락이라는 것은 생활을 즐길 줄 모르게 된 인간이 다른 한 방편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이는 행복에 대한 근대적인 대용품(代用品)이다. 행복에 대해서 진정으로 생각해 내지 못하는 근대인은 별수 없이 오락에 대해 궁리해 내는 것이다.

 

 

   오락이라는 것을 간단이 정의(定義)하자면, 다른 방편(方便)의 생활인 것이다. 이 다른 것이란 무엇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 다른 것이란 원래 종교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오락은 축제(祝祭:제사(祭祀))로서만이 가능했었다.

 

 

   이런 관념을 잃었을 때 오락은 단지 일하는 시간을 잘라 노는 시간, 고지식한 활동에 대한 향락적인 활동, 결국은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즐거움이 생활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다른 것, 즉 오락 속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활의 하나에 지나지 않던 오락이 생활과 대립되어졌다. 생활의 분열(分裂)에서 오락의 관념이 생겼다. 오락을 찾는 현대인은 적거나 많거나 이중생활자(二重生活者)로 되어서 이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근대적 생활은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되었다. 생활을 고통이라고 하면서까지 생각하는 인간은 생활 밖에서 오락을 찾고 있지만 그 오락이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오락은 생활의 부가 물(附加物)인 것처럼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데서, 또 단념해도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데서, 오히려 단념할 수없는 것으로조차 생각하게 되었다.

 

 

   축제(祝祭)는 다른 질서(秩序)이고 보다 높은 질서와 이어져 있다. 그런데도 생활과 오락은 같은 질서라고 생각하는 데서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에서의

 

   질서의 사상의 상실이 이렇게 대립적으로 보이게 하는 근원인 것이다.

 

다르게, 보다 높은 질서에서 보면 인생의 모든 활동은, 고지식하게 일하는 것도 도락(道樂)도, 모든 위희(慰戱Divertissement)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파스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 이런 사상에 돌아가 생각하는 것이, 생활과 오락이란 대립을 털어내기 위해 필요하다. 오락이란 관념의 밑바닥에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없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자기의 전문은 오락이 아니고, 오락이라는 것은 자기의 전문 이외의 것일 때다. 그림그리기는 화가에게는 오락이 아니고, 회사원에게는 오락인 것이다. 또 음악은 음악가에게는 오락이 아니고 타이피스트에게는 오락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문화 활동에서 오락적인 것의 경향이 생겨났다. 여기에 현대문화의 타락(墮落)에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교양의 결함은 교양이라는 것이 오락의 형식에서 얻어지는 데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있다. 전문(專門)이란 “생활”이고, 교양은 전문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이것이 결국 오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문이란 견지에서 생활과 오락이 구별됨에 따라서, 오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의 입장에서는 물론 생활이고 오락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순수한 오락 그것이 생겨나서 오락은 드디어 생활에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오락을 전문으로 하는 이가 생겨나면서 순수한 오락이란 것이 생겨남에 따라서, 일반사람의 입장에 서보면 오락은 자기가 그 오락을 꾸미는데 참가하지 못하고 그저 밖에서 보는 일만 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들이 참가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다른 관중이나 청중과 더불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제사(축제)가 오락의 유일한 형식이었던 시대와 비교해서 생각하면, 대중이 되었거나 혹은 순수한 오락이었거나 혹 향락(享樂)이던 간에 신(神)의 지위(地位)에 들려는 것처럼 돼 있었다. 오늘날, 오락의 대중성이라는 것도 이렇듯 이미 있던 그 것과 같은 것이다.

 

 

   생활과 오락은 구별되는 가하면 하나의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抽象的)으로 대립시키므로 해서 오락에 있어서나 또는 생활에 있어서나 갖가지의 틀린 관념이 생긴다.

 

오락이 생활로 되고 생활이 오락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과 오락이 인격적 통일을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 생활을 즐기는 것, 행복이란 것들이 이 이때에 근본적(根本的)관념(觀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락이 예술로 되고 생활이 예술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의 기술은 생활의 예술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락은 생활 속에 있고 생활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오락은 단순한 소비(消費)적 향수(享受)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生産的) 창조적(創造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락은 다른 방법에 의한 생활일 때 우리는 평생 쓰지 않던 기관이나 능력을 살리게 됨으로써 교양적으로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도 물론 오락은 그저 다른 방법에 의한 생활이지 생활과 동떨어진 다른 것은 아니다.

 

 

   생활과 동떨어진 것으로서의 오락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생긴 것은 근대기술이 인간생활에 파급한 영향이라고 한다면, 이 기계기술을 지배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기술이란 것이 현대문화의 근본문제인 것이다.

 

 

   오늘 날 오락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는 생리적인 것이다. ‘건전한 오락’이라고 하는, 걸 맞는 말이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오늘 날 오락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체조와 스포츠만은 신용할 수 가 있다. 오락은 위생(衛生)인 것이다. 그저 신체적 위생으로써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위생으로도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신체적 위생이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하는 것과 같이 정신적 위생은 관념(觀念)의 흐름을 좋게 하는 것이다. 응어리 진 관념이 오늘처럼 많다고 하는 것은 오락의 의의와 방법이 정말로 이해되지 않은 증거인 것이다.

 

 

   생활을 즐기는 이는 리얼리즘(realism: 현실주의)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리얼리즘은 기술의 리얼리즘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생활 기술의 첨단(尖端)에는 언제나 이미지네이션(imagination:상상력)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작은 일일 지라도 공부와 발명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발명이 단순히 수단의 발명에 그치지 않고 목적의 발명도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제1급의 발명은 어떠한 기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술적 수단의 발명과 함께 새로운 기술적 목적의 발명이었다. 진정 생활을 즐기는 데는 생활 속에서 발명적(發明的)일 것과, 특별히 새로운 생활의욕(生活意慾)을 발명(發明)하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에피큐리안(epicurean:쾌락주의자)이란 생활의 예술에서 다이렡탠트<(dilettante:취미 본위의 호사가(好事家)>이다. 진실(眞實)하게 생활을 즐기는 이는 취미(趣味)본위의 호사가와는 구별되는 창조적(創造的)인 예술가(藝術家)인 것이다. //미끼기요시/외통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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