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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瞑想)에 관하여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 갑자기 말이 멈추어질 때가 있다. 이런 때 나는 명상에 들어갔던 것이다. 명상은 늘 불청객인 것이다. 나는 이 명상을 불러오지도 않고 불러올 수도 없다. 그러나 명상이 될 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파고들고 만다. “이제부터 명상에 들어가자”라든지 하는 것은 어리석게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이 불청객에 대해서 늘 마음으로 준비하며 대비하고 있다.

 

 

   사색(思索)이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고 한다면 명상(瞑想)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명상은 어떤 하늘이 주는 성질이 갖고 있는 데 그래서 명상과 신비주의(mysticism神秘主義)와는 보다 깊은 얽힘이 있는 것이다. 명상은 많거나 적거나간에 신비적인 것이다.

 

 

   이렇듯 설명할 수 없는 나그네, 명상은 어떤 때 어디서나 오게 되는 것이다. 그저 혼자 조용하게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몹시 시끄럽고 혼잡한 중에도 오는 것이다. 고독(孤獨)은 명상(瞑想)의 조건이기보다는 결과인 것이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이 모인 청중을 향해서 말 할 때 (나는) 생각지도 않은 명상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불가항력(不可抗力)인 몰래 파고 숨어들어오는 놈을<틈입자(闖入者)>(나는)없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몸을 맡길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명상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명상이 하늘에서 온 것처럼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프라톤<Platon고대 그리스의 철학자(427-347 B.C.).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테네 교외에 학교를 설치하여 아카데미아 학파를 창설. 저서에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국가’ 등 약 30편의 ‘대화편(對話編)’이 있음>은 소크라테스<Sokrates그리스의 철학가(470-399 B.C.). 주로 아테네에서 활동하였고 소피스트에 반대하여 진리의 절대성을 주장했음. 만년에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부패 타락시킨다 하여 독배를 받고 죽임을 당함.>가 포티다이아의 진영에서 하루 밤낮을 서서 명상에 잠겨있었다고 쓰고 있는 데, 그 때 소크라테스는 제대로의 명상을 하였지 사색한 것은 아니다. 그가 사색한 것은 오히려 그가 시장에 나타났을 때 아무에게나 붙들려서 담론할 때였다. 사색의 근본적인 형식은 대화에 있다. 포티다이아의 진영에서의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시장에서의 소크라테스-이처럼 명료하게 명상과 사색과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없다.

 

 

   사색(思索)과 명상(瞑想)과의 차이는 사색 중에서조차 명상에 빠져드는 수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명상(瞑想)에는 과정(過程)이 없다.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 과정적(過程的)인 사색(思索)과 다르다. 모든 명상은 감미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상하기를 바라고 그런 만큼 신비주의(神秘主義)에 대한 기호(嗜好)를 갖고 있다. 하지만 명상은 본래(本來)부터 우리들의 의욕(意慾)에 의존(依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매력적(魅力的)사색의 그 매력은 명상에 있으며, 이 신비주의(神秘主義)도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해서 모든 사상(思想)은 원래 달콤한 것이다. 사색이 달콤하지는 않다. 달콤한 사색이란 어쩐지 사색이 아닐 성싶다. 사색의 근저(根柢)에 있는 명상이 감미로운 것이다.

 

 

   명상은 그 단맛 때문에 사람을 유혹한다. 참 종교가 신비주의(神秘主義)에 반대하는 것은 이런 유혹(誘惑) 때문일 것이다. 명상은 달콤하지만 거기에 유혹되었을 때에 명상은 어느새 명상이 아닌 것이 되고, 몽상(夢想)이랄까 공상(空想)이랄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명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사색의 엄숙성(嚴肅性)에 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명상에 대한 준비는 사색의 방법적(方法的) 훈련(訓練)을 잘 갖추는 것이다.

 

 

   명상벽(冥想癖)이란 말은 모순(矛盾)인 것이다. 명상은 어떤 습관에서 이루어지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릇이 되어버린 명상은 아무런 명상도 아니고 몽상(夢想)이거나 공상(空想)인 것이다.

 

 

   명상(瞑想)이 없는 사상가(思想家)는 존재(存在)할 수 없다. 명상은 그에게 비전을 주게 되므로, 이런 비전이 없이는 진정한 사상(思想)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창조적(創造的)인 사상가(思想家)는 언제나 비전을 딛고 엄숙(嚴肅)하게 사색(思索)에 빠지는 것이다.

 

 

   근면(勤勉)은 사상가(思想家)의 주요(主要)한 덕(德)인 것이다. 이 덕(德)으로 해서 사상가(思想家)와 모든 명상가(瞑想家)나 몽상가(夢想家)가 구별(區別)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근면만으로 사상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걸 맞는 명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상가는 또 끊임없이 명상의 유혹과 싸우고 있다.

 

 

   사람은 글을 쓸 때나 혹은 쓰려고 할 때 사색할 수가 있다. 그러나 명상은 그렇지 않다. 명상은 말하자면 정신의 휴식인 것이다. 그래서 정신에도 육체적 일과 마찬가지로 쉴 짬이 필요하다.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아주 안 쓰는 것도 모두 정신에는 해로운 것이다.

 

 

   철학적인 문장에서 빠우제 라는 것은 명상인 것이다. 사상의 스타일을 주로 하여 명상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 명상을 리듬이라고 치면 사색은 스타일인 것이다. 명상의 달콤한 맛에는 적거나 많거나 불문하고 언제나 에로스<(Eros)희랍 신화에서 사랑의 신. 로마 신화의 큐피드에 해당>적인 것이 있다.

 

 

   사색(思索)과 명상(瞑想)과의 관계는 정신과 신체와 관계와 같은 양상(樣相)이다. 명상(瞑想)은 사상적 인간(思想的人間)의 이른바 원죄(原罪)인 것이다. 명상(瞑想)할 때, 명상에 따른 신비스러움 속에 구제(救濟)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단(異端)인 것이다. 종교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상적 인간에 있어서도 구제(救濟)는 본래(本來) 말씀에 의해 이루어질 뿐이다. //미끼기요시/외통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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