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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론 노트

질투(嫉妬)에 대해서

 

   만약 내가 사람의 성정(性情)이 선(善)하다는 것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질투(嫉妬)일 것이다. 질투야 말로 베콘이 말한 것처럼 악마와 어울리는 속성(屬性)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질투는 교활(狡猾)하고 어둠속에 있으며, 좋은 것을 해치기 위한 활동이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에 의한 생각이라도 천진난만(天眞爛漫)을 드러낼 때에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갖는다. 하지만 질투에는 천진난만이란 것이 없다. 사랑과 질투는 그 씨앗으로서는 닮은 데가 있지만 우선 이 한 가지만은 다르다. 즉 사랑은 순수한데 반하여 질투는 언제나 음험(陰險)하다. 이것은 어린 이이 질투에서도 조차 그렇다.

 

   사랑과 질투랑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생각 중에서 보다 술책(術策)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다른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에 비해서 훨씬 지속적(持續的)인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이지(理智)의 술책(術策)이 들어 갈 수가 있다. 또 역(逆)으로 이지의 술책에 의해서 그들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은 지속성(持續性)을 더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이라도 사랑과 질투만큼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은 그만큼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괴로움 속에 모든 술책이 생겨난다. 더욱이 사랑은 질투에 섞여 들어감으로써 술책적(術策的)으로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해서 술책적인 사랑에 의한 것 밖에 즐길 수 없는 사람은 상대에 질투를 갖도록 하는 수단을 쓴다.

 

   질투는 평생(平生)토록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생각’을 하도록 한다. 사랑과 질투의 세(强)기는 그 둘이 심하게 상상력(想像力)을 일으키는 데 서 오는 것이다. 상상력은 마술적(魔術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에 질투한다. 사랑과 질투가 술책적(術策的)이란 것도 그들이 상상력을 쌓아올려서, 상상력에 쌓아올려짐으로서 발동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질투에서 상상력이 발동하는 것은 그 속에 섞여든 어떤 사랑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질투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없고, 사랑 속에는 악마가 없다고 누가 알(말할) 수 있을 것인가!

 

   질투는 자기보다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자기보다 행복한 상태인 사람에 대해서 일어난다. 허지만 그 차이가 절대적이지 않고, 자기도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공통적인 것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질투는 질투당하는 사람의 지위에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자기의 위치에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질투가 보다 높은 데에 눈길을 돌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표면상 의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평균적인 것에 향해있는 것이다. 이 점이 사랑이 그 본성에서 언제나 보다 높은 것에 동경하는 것과 다르다.

 

   이렇게 해서 질투는 사랑과 상반(相反)되는 성질로써 인간적인 사랑에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끈임 없이 그 속으로 간섭하여 오는 것이다. 같은 직업을 기진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되기는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사이보다 무척 어려운 것이다.

 

   질투는 성질적(性質的)인 것에는 활동하지 않으나 양적(量的)인 것에는 활동한다. 특수적(特殊的)인 것, 개성적(個性的)인 것들은 질투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 질투는 다른 이를 개성으로써 인정하는 것, 자기(自己)도 개성(個性)으로써 이해되어야 된다는 것을 모른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것에 관해서 질투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사랑의 대상으로 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특수적(特殊的)인 것, 개성적(個性的)인 것이다.

 

   질투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내면성(內面性)인지를 모른다.

 

   질투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신(神)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간세상에서 평균화(平均化)를 구(求)하는 경향이 있다.

 

   질투는 나돌아 다니기는 하지만 집(家)은 지키지 않는다. 이는 자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밖에 나가려는 호기심(好奇心)에서의 하나의 큰 원인이 되어있다. 질투의 어울림 없는 순진한 호기심이란 얼마나 있겠는가!

   하나의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은 지성에 의해서보다는 다른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에 의해서 보다 잘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리이다. 영웅은 질투(嫉妬)적이지 않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만약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공명심(功名心)이나 경쟁심(競爭心)이라고 하는 다른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 이 질투보다 강해서일게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서 한층 지속적인 힘으로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공명심이나 경쟁심은 가끔은 질투와 다르다. 그러나 양 쪽 다 차이는 명료(明瞭)하다. 우선 공명심이나 경쟁심은 공공적(公共的)인 장소를 알고 있는 반면에 질투는 그런 것을 모른다. 질투는 모든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풀려고 생각한다. 질투가 공명심이나 경쟁심으로 바뀌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훨씬 어렵다.

 

   질투는 늘 바쁘다. 질투처럼 바쁘고 더욱이 비생산적(非生産的)인,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의 존재를 나는 알 수 없다.

 

  만약 악의 없는 마음일 것을 정의하려고 한다면 질투(嫉妬)적이지 않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적절할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데서 질투가 생긴다고 하는 것은 옳다. 무엇보다 아무 자신도 없다면 질투가 생길 이유가 없겠지만, 그러나 질투는 그 대상(對象)에서 자기가 질투하고 있는 그 점을 피하고 다른 점으로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질투는 사술(詐術)적인 것이다.

 

   질투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自信)을 가지라고 말 할 수 있겠다. 허나 자신(自信)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자기가 무엇을 만들므로 해서 질투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물건을 만들므로 해서 자기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해서 개성이 생긴다. 개성적인 사람이야말로 질투(嫉妬)적이지 않다. 개성을 떠나서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사실적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미끼기요시/외통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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