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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론 노트

명예(名譽心)에 대해서


   명예욕과 허영심만치 혼돈하기 쉬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처럼 구별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것도 없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인생살이 지혜(智慧)의 적어도 반(半)이 된다고도 할 것이다. 명예욕이 허영심과 오해되는 일은 수두룩하다. 그런가 하면 또 명예욕은 지극히 쉽게 허영심으로 변하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

 

   람의 입장에서는 양자를 구별하기 위해서 슬기로운 안목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살이에서 어떤 엄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명예심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토익<금욕주의자:Stoic: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이라는 것은 오히려 명예심과 허영심을 구별하여 후자에 유혹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 구별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스토익 이라고 하드래도 하나의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허영심(虛榮心)은 우선 사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하여 명예심은 우선 자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명예욕은 자기의 품위를 위해서 자각(自覺)되는 것이다.

 

   모든 스토익은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자다. 그들의 스토익이즘이 자기 품위를 위한 자각(自覺)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경우 좋은 의미에서 개인주의자다. 그래서 그 것이 허영의 일종인 경우에는 나쁜 의미로서의 개인주의 자에 지나지 않는다. 스토이즘의 가치와 한계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에 있어서 가능하다. 스토이즘은 제 것인 여러 가지 정념(情念: 감정에 의한 사념思念)을 자기와는 관계없는 자연물(自然物)과 같이 보는데서 제어(制御)하지만, 그 때문에 자기 자신이나 인격이란 추상적(抽象的)인 것을 확립한다. 이 추상적인 것에 대한 정열(情熱)이 그 도덕의 본질을 만들어낸다.

 

   명예심(名譽心)과 개인(個人)의 의식(意識)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關係)이다. 다만 인간만이 명예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도 인간은 동물에서보다는 비길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많은 개성(個性)이 분화(分化)되어 있는 데에 관계되는 것이리라. 명예심을 개인의 의식(意識)에 있어서 말하자면 구성적(構成的)인 것이다. 개인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아주 깊은 내면에서의 최고의 명예심인 것이다.

 

   명예욕도 허영심과 같이 사회를 향해서 행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허영심(虛榮心)에서의 상대(相對)는 “세상”이란 것, 풀어 말하자면 갑(甲)도 아니고 을(乙)도 아닌 동시에 갑도 되고 을도 되는 ‘사람’ 아노님<anonym익명(匿名)> 인 ‘사람’인 것과는 달리 명예심(名譽心)에서는 상대(相對)가 갑이 되고 혹은 을도 되어 그들 인간이 개인으로서의 독자성을 잃지 않은 상태의 사회이다. 허영심은 본질적으로 아노님이다.

 

   허영심에 사로잡일 때 인간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개인의 독자성(獨自性)의 의식(意識)을 잃는 것이 보통이다. 그럴 때 그는 아노님의“사람”을 대상으로 함으로서 그 자신 아노님의 “사람‘이 되어 허무(虛無)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명예심에서는 그것이 허영심으로 변하지 않고 진실(眞實)한 명예심(名譽心)에 머무는 이상 사람은 자기와 자기의 독자성의 자각에 입각(立脚)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무엇보다 많은 허영심에 끌리며 유행에 몸을 맡긴다. 그래서 유행은 아노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욕을 지닌 사람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은 유행의 모방(模倣)인 것이다. 명예심(名譽心)이란 것은 모든 아노님인 것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

 

   발생적(發生的)으로 말하자면 네 발로 땅을 밟지 않아도 될 무렵부터 사람에게 명예심이 생겨났다. 그가 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명예심(名譽心)에서의 최초(最初) 최대(最大)의 행위(行爲)였다.

 

   직립(直立)한다는 것으로 해서 인간은 추상적(抽象的)인 존재로 되었다. 그 때에 그에게는 손이라고 하는 것, 그의 모든 기관(器官)중에서 보다 추상적(抽象的)인 기관(器官)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동시(同時)에 그에게 추상적(抽象的)인 사고(思考)가 가능(可能)하게 되었던 것이다. 등등-그러므로 해서 명예심이란 것은 모든 추상적인 것에 대한 정열(情熱)인 것이다.

 

   추상적(抽象的)인 것에 대한 정열(情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명예심에서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명예심에서 나온 것처럼 말하는 것들도 실은 허영심에 바탕을 둔 것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존재로 된 인간은 어느새 환경과 직접 융합해서 살지 못하고 오히려 환경에 대해, 환경과 싸워가며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명예심이란 것은 모든 의미에서의 전사(戰士)의 마음이다. 기사도(騎士道)거나 무사도(武士道)같은 것에서 명예심(名譽心)이 근본적(根本的)인 덕(德)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서 이름을 소중히 하는데 대하여 말하자면, 이름이란 것은 추상적인 것인데, 만약 그 이름이 추상적이지 않으려면 거기에 명예심은 없고 허영심만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의 평판(評判)이란 것은 아노님인 것이다. 따라서 비평에 연연하는 것은 명예심이 아니고 허영심에 속하는 것이다. 아노님이란 것과 추상적인 것은 같지 않다. 양자(兩者)는 구별(區別)하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모든 명예욕은 어떤 방법으로든 영원(永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 영원이란 것은 추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이름을 소중히 한다고 할 때, 이름은 개인의 품위의 의식(意識)인 것이므로 더욱이 추상적인 것으로서의 영원이란 것에 관련(關聯)되어 진다. 그러므로 허영심은 시간적인 것에서도 더더욱 시간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추상적(抽象的)인 것에 대한 정열(情熱)에 의해서 개인이라는 보다 현실적(現實的)인 것의 의식(意識)이 성립된다. -이것이 인간(人間)존재(存在)에 대한 비밀(秘密)인 것이다. 예를 들면 인류(人類)란 것은 추상적인 것인데 이 인류(人類)라고 하는 추상적인 것에 대한 정열(情熱)이 없고서는 인간은 진정한 개인으로 될 수가 없다.

 

   명예심(名譽心)은 추상성(抽象性)속에 그 진리(眞理)와 함께 그 허위(虛僞)가 있는 것이다.

 

   명예욕(名譽慾)으로 인해서 멸망(滅亡)하는 사람은 추상적인 것에서 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추상적인 것에서 망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것이므로, 그것은 그의 명예욕에 속하는 것이다.

 

   명예심은 자기(自己)의식(意識)과 불가분(不可分)의 것이지만, 자기(自己)라고 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추상적인 것이다. 따라서 명예심은 자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밖을 향해서, 사회에 대해서 나아간다. 여기에 명예심(名譽心)의 모순(矛盾)이 있다.

 

   명예심은 백주(白晝)가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대낮이란 무엇인가? 추상적인 공기(空氣)인 것이다.

 

   명예심은 아노님의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더욱 추상적인 갑(甲),추상적인 을(乙), 결국 추상적인 사회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사랑은 구체적인 것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점에서 사랑은 명예심과는 서로 정반대되는 것이다. 사랑은 겸허(謙虛)할 것을 요구하는데, 명예심은 당연히 자주 오만(傲慢)하다.

 

   종교의 비밀은 영원(永遠)이라든지 인류(人類)라든지 하는 추상적(抽象的)인 것이 여기에서는 보다 구체적(具體的)인 것으로 되는데 있다. 종교야말로 명예심(名譽心)의 한계(限界)를 명료(明瞭)하게 하는 것이다.

 

   명예심을 추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옛 사회는 오늘날의 사회만치 추상적이지 않았던 관계로 명예심도 보다 근본(根本)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가 보다 추상적인 것으로 됨에 따라서 명예심도 또한 점점 더 추상적인 것으로 되어간다. 공동사회<독Gemeinschaft共同社会게마인샤프트>적으로 된 구체적(具體的)인 사회에서는 추상적인 정열(情熱)에서의 명예심은 하나의 커다란 덕(德)이 되는 것이다. 게마인샤프트적인 추상적인 사회에서 이런 명예심은 그 뿌리가 없는 것으로 되어 허영심(虛榮心)과 명예심(名譽心)과의 구별(區別)도 해내기 어렵게 되었다. 미끼기요시/외통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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