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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론 노트

소문( 所聞)에 대해서

所聞

   소문은 불안정(不安定)한 것이고 불확정(不確定)한 것이다. 더욱이 자기로서는 손쓸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불안정하고 불확정적인 것들에 둘러싸여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문은 우리에게 운명적(運命的)인 것인가! 운명으로 치기에는 지나치게 우연적(偶然的)인 면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우연적인 것이 때로는 운명보다 심하게 우리의 존재를 결정 짖는다.

 

   만약 소문이 운명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다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만약그것이 운명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개척(開拓)하지 않으면 안 된다.하지만 소문은 운명이 아닌 것이다. 소문을 운명처럼 다독거리거나 개척(開拓)하기도 한다는 것은 바보스런 짓이다. 우리들이 적지않히 구애(拘碍)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이것이 우리의 운명조차 결정한다고 하니 어찌된 일일까.!

 

   소문은 늘 우리와 먼 곳에 있다. 우리들은 그의 존재조차도 모를 때가 많다. 이렇게 멀리 있는 소문이 우리를 오히려 밀접하게 관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이 관계가 잡히지 않는 우연(偶然)덩어리인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수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연의 끈에 의해서 어디에 있던지 간에 엮여져 있는 것이다.

 

   소문은 평판(評判)으로서 하나의 비평(批評)이라고 하지마는 그런 비평에는 어떠한 기준도 없고, 수 없이 많은 우연적(偶然的)인 기준이므로 이에 따라 원래부터 어떠한 비평도 아니고 극히 불안정(不安定)하고 불확정(不確定)한 것이다. 더욱이 이 불안정하고 불확정한 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하나의 보다 중요한 형식인 것이다.

비판(批判)을 비평(批評)으로 받아들여서 그에 고지식하게 대질(對質)하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하려고 하는가! 상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가하면 가는 곳마다에 있다. 더욱이 우리는 이 대질할 수도 없는 소문과 끊임없이 대질하여야만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문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소문은 당사자의 것조차도 아니다. 아무리 소문이 사회적인 것이라고 하드래도 엄밀하게 말하면 사회의 것도 아니다. 그 실체(實體)가 없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누구나 이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소문은 원초적(原初的)인 형식(形式)에 있어서 허구(虛構fiction)인 것이다.

 

   소문은 감정(感情)에서 생기는 사념(思念)에서 나오는 것이다. 질투(嫉妬)에서, 시기심(猜忌心)에서, 경쟁심(競爭心)에서, 호기심(好奇心)에서 등등이다. 소문은 사로잡을 수 없는 것이면서도 그 소문으로 존재한다는데 이르러서는 어느새 감정(感情)에서 생기는 사념(思念)이 아니고 관념(觀念)적인 것이다. -열정(熱情)을 갖고 말한 소문은 소문으로서 받아들일 수가 없지 않을 것이다.-여기에 이른바 제1차적인 관념화작용(觀念化作用)이 있는 것이다. 제2차의 관념화작용은 소문에서 신화(神話)로 전화(轉化)하려 하는 것이다. 신화(神話)는 고차적(高次的)인 허구(虛構:Fiction)인 것이다.

 

   어떠한 소문의 근원(根源)이 불안하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불안에서 소문을 만들고 또는 받아들이고 다시 전하는 것이다. 불안은 감정(感情)에서 생기는 사념(思念)의 안의 하나의 정념(情念)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정념(情念)을 움직이는, 정념의 정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정념의 울을 넘어버린 그 것이다. 불안(不安)과 허무(虛無)를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허무에서 생긴 것이어서 또한 소문은 허구인 것이다.

 

   소문은 과거도 미래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소문은 본질적으로 현재의 것이다. 우리는 이 부동(浮動)적인 것을 다음으로, 다음으로 옮겨가는 정념(情念)과 합리화(合理化)에 의한 가공(加工)으로 마침내 그것을 신화화(神話化)하여가는 결과에 이른다. 때문에 그 소문이 영속됨으로 해서 신화로 변해간다. 이 소문이 어떤 것이건, 우리는 그 소문 때문에 멸망(滅亡)하지는 않는다. 소문을 언제까지나 소문으로 덮어둘 수 있을 만큼 현명하게, 무관심하게, 냉정하게 있을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소문에는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우리들은 역사(歷史)라고 한다.

 

   소문으로써 존재하느냐 못하느냐는 그것이 역사적인 것이냐 아니냐를 구별 하는 하나의 표식인 것이다. 자연의 것이라 하드래도 소문으로 되는 경우 그것은 역사(歷史)의 세계(世界)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역사적 인물이면 인물일수록 보다 많은 소문을 타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모든 것이 이토록 불안정한 것에 근거(根據)해있다. 보다도 소문은 그것이 역사 안에 들어오는 입구를 넘지 못하고, 거개(擧皆)의 것은 그 입구(入口)에 서성이다가 사라지고 만다. 정말로 역사적인 것으로 된 것은 벌써 소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화처럼 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소문에서 신화(神話)로의 범주(範疇)전화(轉化), 여기에 역사 관념화작용(觀念化作用)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歷史)는 감정(感情)에 의한 사념(思念)의 한 가운데 있는 관념(觀念) 또는 이념(理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깊은 비밀에 속하는 것이다. 소문이 역사에 들어오는 입구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이 세상에 들어오기 위해서 한번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적인 것은 소문이라는 이 거칠고 거친 불안정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물체(物體)가 결정(結晶)되기 전에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탕(震盪)과 같은 것이다.

 

   역사적인 것은 비평(批評)에서보다는 소문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인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비평(批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소문이라고 하는 변덕스런, 우연적(偶然的)인, 불확정(不確定)한 것들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문보다도 유력(有力)한 비평(批評)이라는 것은 몹시 드물다. 역사는 불확정(不確定)한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문이라는 것은 그 중에서도 보다 불확정적(不確定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보다 확정적(確定的)이지 않은가!

 

   소문은 확률(確率)의 문제인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물리적(物理的) 확률(確率)과는 다른 역사적(歷史的) 확률(確率)의 문제(問題)인데, 누가 이 확률(確率)을 계산(計算)해 낼 것인가!

 

   소문을 빗대어 비평(批評)하는 비평가는 많다. 하지만 비평(批評)을 역사적 확률(歷史的確率)의 문제(問題)로서 다루는 비평가(批評家)는 드물다. 내가 아는 한은 바레리가 그다. 이런 비평가(批評家)에게는 수학자(數學者) 같은 지성(知性)이 필요(必要)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비평가(批評家)가 독단적(獨斷的)인가.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비평가가 자기도, 세상도, 믿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비평적(批評的)이기보다는 실천적(實踐的)인가!미끼기요시/외통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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