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마카오는
본래 광둥 성 쌍산 현
(중국어 정체: 香山縣, 병음: Xiāngshān Xiàn 향산현[*])[1]의 일부였다.
1557년, 명나라는 해적 정벌을 원조한 공적으로서,
포르투갈인에게 마카오의 거주권을 주었다.
그 후, 마카오는 금, 은, 도자기, 아편 등의
중계무역과 기독교 포교의 기지로서 번영했다.
1887년에는 포르투갈과 청나라 간에 맺은 조약에 따라
정식으로 포르투갈 령이 되었지만,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무역항은 쇠퇴했다.
1966년의 폭동을 계기로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
명나라 가정(嘉靖)35년(1557년),
포르투갈인이 당시 명나라광동지방정부에게서
마카오 거주권을 획득하여
중국에 처음으로 유럽인이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포르투갈인이 마조각(妈祖阁, 묘)근처에
등록을 하여 살았는데,
현지인에게 그곳의 지명을 물으니
현지인은 묘를 묻는것으로 착각하여
마조각이라고 알려주었는데,
이것이 원인이되어 마카오라고 불렸다.
--작은곰 (토론) 2009년 11월 11일 (수) 02:08 (KST)
1986년부터 중국에 마카오를 반환하는 교섭이 시작되어,
반환 시기를 1999년 12월 20일로 하는
협정이 1987년 중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되었다.
1993년 3월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澳门特别行政区基本法)"이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全国人民代表大会)에서 채택되어,
1999년 12월 20일에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되었다.
1999년까지는 총독이 최고의 통치 관직이었다.
현재의 마카오는 일국양제를 정한
기본법에 의해 2050년까지
현재의 사회·경제 체제를 지속하는 것이 보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