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별명 없이 자란 이는 없을 것이다.
별명은 바라보는 눈의 높이나 각도가 달라서 붙여지는 이름이다. 느낀 바를 곧바로 드러내어서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이는 순간적 감응의 결과로 붙여진 이름이다.
'국민학교' 여름 방학이 끝나고 막 새 학기가 시작되어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윗반 당번 애가 조금 일찍 나와서 학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변소'로 이어졌다. 아무도 없는 '변소'에 처음 발을 들이는 당번이 조금 두려웠던 것은 '달걀귀신'이 생각나서다. 숨을 죽이고 발걸음 소리를 낮추어 한 발 한 발 옮겨놓았다. 여차하면 뒤로 뛸 생각을 하며 주먹을 쥐고 살금살금 더 깊은 저쪽으로 다가갔다.
천장은 높고 창은 높이 매달려 있다. 아직 닫혀본 적이 없는 조각 창문은 쌍쌍이 나란하다. 그중 겨우 열린 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울창한 '플라타너스'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희미한 빛이 열려있는 창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딘가에서 나직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담 넘어 '면사무소'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같기도 하다. 당번은 머리끝이 서면서 손가락 마디가 저리다. 이 절임은 점점 팔을 통해서 어깨 위로 올라갔고 이윽고 심장을 거쳐서 아래로 밀려 내려가더니 기어이 발바닥이 시멘트 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모든 신경은 소리 나는 곳으로 집중되었다. 등 뒤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른쪽 소변보는 발 틀 양 끝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다가 또 자세히 들어보면 칸칸이 막아놓은 대변보는 칸 안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여, 당번은 몸이 무엇인가에 꽁꽁 묶여 가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서 뛰었다.
당번의 행동은 최면에 걸린 것처럼, 딴에는 전속력으로 밖을 향해서 달렸지만, 그 실 그의 발걸음은 한 발짝의 거리를 넘지 못하고 느리다. 뒤에서는 자꾸 당기는 것 같아서 발은 더욱 안 떨어진다. 그러나 당번은 열심히 뛰려고 팔을 흔들기는 하는데 그 실 팔의 움직임 또한 보일 듯 말 듯 하다.
변소 건물 밖까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일 분이 채 안 됐지만, 당번은 한 시간도 더 걸린 것 같았다.
운동장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여기저기 하나둘씩 있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일단의 탐험대(?)를 급조하여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변소로 향했다. 시멘트 바닥에 발가락만을 세우고, 발 없는 듯이 움직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노래는 여전히 들릴 듯 말 듯 흘러들어오고, '변소'의 저쪽 구석에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노래는 칸막이한 대변소가 나란히 늘어있는 남쪽에서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문을 열지 못한다.
‘탐험 단원’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하나같이 남쪽에다 턱을 밀어댔다. 노래는 구성지게 조금씩 톤이 높아만 갔다.
용감한 ‘탐험 단원’도 감히 변소의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달걀귀신'이 곳 튀어나올 것 같고 내리 덮칠 것 같아서 오히려 손에 손잡고 들어온 출입문을 향해서 저마다 뒤에 쳐지지 않으려고 웅성거리는, 탐험대의 소리가 오히려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출입문을 향해서 와르르 뛰어나가며 ‘달걀귀신이다!’ ‘달걀귀신이다!’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변소 밖에서 '달걀귀신'을 잡는다며 저마다 햇볕이 내리쬐는 '변소'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바지춤을 바로 하며 계면쩍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탐험대원을 향해서 바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와아’ 함성이 울렸다. '달걀귀신'을 잡았다며 야단이다.
그러나 귀신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것, 해서 그는 ’변소의 축음기‘(벤죠노치꾸옹끼)가 됐고 이 소리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교로 퍼져나갔다. 이후 그의 별명은 이것으로 굳어졌고 유명인(?)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노래가 부르고 싶었으면, 변소에서라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기겠기에, 얼마나 입에서 자연스레 흘렀으면, 얼마나 노래에 심취했으면 그토록 꾸린 내 나는 장소에서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누구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그의 음악적 소질을 자연 발산됐다. 노래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에겐 온 생각과 행동이 노래로 표현되고 노래로써 말하고 노래로써 답한다. 몸이 날렵하여 체육에도 달관이다.
그의 이런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지금쯤 거목이 돼서 어느 한 곳에 우뚝 섰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하는지, 전혀 연락이 끊겼다.
외곬의 그가 옆 돌아보지 않고 일로매진했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벤죠노 치꾸옹끼(변소의 축음기)’여 말하라!/외통-
고운 마음, 바른 생각으로 밝은 사회 이루자.-밝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