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외통궤적 2008. 5.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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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961227 외갓집

해마다 감자 구덩이에서 갓 담겨 올라온 싸리 삼태기 속의 감자 무더기에서 썩은 감자 향이, 나무뿌리 머금은 흙 향기와 뒤섞여 봄기운을 타고 향긋 코끝을 스칠 때면 산불 소식이 함께 귀를 들락거린다.

 

태백 준령의 등줄기가 뻗어 내리다가 가지 처서 동해로 뻗은 갈비뼈를 들어내어 나직이 엎드렸다. 산들도 손을 뻗쳐서 푸른 바다 물을 저어 보는, 운 좋은 산자락이 있다. 그런가 하면 더는 못 가겠다 싶었는지, 그래서 주저앉아 마을이나 감싸 않자 싶었는지, 양팔을 벌려 어머니 품같이 언덕저서 느려놓은 놈도 있다.

 

절경 관동(關東)에도 저녁 땅거미가 산록에서 저녁노을과 양 갈림 할 때 바닷물을 붉게 물 드리는 불청객 불꽃 노을이 해마다 찾아오는데, 올해도 어김없다.

 

불은 태백준령을 넘어 밤새도록 바다를 향하여 내치며 산허리를 휘감아 띠를 이루다가 활처럼 휘어서 그 웅장한 준령을 삼켜 넓히고 있다. 칠 흙같이 어두운 밤에도 산은 그 준령의 두려움을 기를 쓰며 하늘과 땅에, 바다에 알리고자 포효(咆哮)한다.

 

내가 어릴 때의 이른 봄, 아직 깊은 산골짜기와 논두렁 밭이랑 음지에 눈이 남아서 희끗희끗하던 때, 볼에 명주목도리 감싸게 하는 세찬 바람이 불 때, 나는 흰 두루마기에 중절모자 쓰고 등짐지신 아버지와 머리에 한보따리 이신 어머니에게 양손을 잡혀 이 십리 길을 걸어 외가에 갔었다. 그 동네의 말썽꾸러기 형들이 병정놀이하던 성황당의 넓은 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고목에 불이 붙기 시작하드니 어느새 마을 전체를 삼키고 말았단다. 차례대로 붙은 불도 아니다. 집집마다 따로따로 부이 일어났단다.

 

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더니 대문 널빤지를 후려치며 열어 제꼈다. 바람은 부엌 아궁이에 들어가서 점심준비 하는 아낙네의 치마폭에 불덩이를 안겼다. 연기에 눈이 감기고, 부삽으로 떠 얹힌 듯 얼굴에 불덩이를 안은 아낙은 혼비백산하여 뜰 안으로 후닥닥 나갔는데, 또 돌개바람이 아낙네의 치마를 훌렁 뒤집어 얼굴에 씌웠다.

 

불이야 ! 불이야! 하늘에 외쳐도 아무도 뛰어 오거나 살피려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을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오직 자기 집 세간만을 꺼내려고 날뛰고 있을 뿐이다.

 

효성 깊은 외숙은 밥 짓는 것조차 금지시킨 <경반 단>의 금 취사(炊事)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외할머니를 돌보셨으니 더욱 불 속을 헤집고 다녔으리라.

 

어떤 집은 세간을 끌어낸다고 들락거릴 때 돌개바람이 화로불의 불씨를 움켜잡아내어 짚가리에 쏟아 붓는다. 불이야 소리는 지를 겨를조차 없다. 불붙은 짚단이 하늘을 날고, 양은냄비가 굴러가고, 이불보가 나무에 걸친다. 연기와 함께 하늘로 치솟는 잿더미에 어린이 도화지가 난다. 도화지는 바람을 타고 한길 가를 날다가 트인 들판으로 멀리 날아간다. 어린애 이름 부르는 소리,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맛 부르며 부닥치는 소리. 온통 아비규환이었으리라.

 

부모를 따라 '지골(계곡리)' 외가에 갔을 때, 원시생활의 원형이 거기 있었다. 농경민족의 애환도 거기 있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민족의 고대사와 생활사를 가르치지 않았으련만 용케도 그들은 땅을 파고 눌러 앉았다. 피붙이로부터 들녘에 있는 짚을 얻어다가 엮어서 원뿔 움집을 만들었는데, 고스란히 잃어버린 자기 집 그 터 한 쪽에 뿌리박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이고 지고 가신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어머니의 눈은 엮어 얹은 이엉사이로 파랗게 보이는 하늘로 흘러가는 구름을 망막에 담았다. 끊어질듯 말듯, 가는 한숨에 섞어, 저더러 ‘나가 놀아라.’

 

어머니는 당신의 일을 잠시 잊고 외갓집 움막을 가슴에 담아 삼켰다./외통-

 

-현자는 남의 과오에서 배우고 우자(愚子)는 자기과오에서 배운다.

-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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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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