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어느 날, 작은집에서는 할아버지의 소상(小祥)을 지내고 있었다. 어른들은 누나와 나를 집에 남기고 일찌감치 작은집에 가셨고 누나는 누나대로 친구를 불러들여 화로를 차지하니 단 하나인 집안의 내 장난감이 없어진 턱이 됐다.
아랫집 <정환>이가 부른다. 무엇을 어떻게 입고 나갔고 신은 무슨 신을 신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튀듯이 밖에 나가서 동무를 만났는데, 마땅히 놀 곳을 찾지 못한 <정환>이와 나는 윗마을에 있는 <쌍 가매>네 집으로 달려갔다.
집집이 개숫물 버린 곳에 아직 살얼음이 번질거리고 그나마 햇볕이 닿은 곳은 녹아서 물기로 질퍽거리는, 늦은 아침이었다.
윗마을이라야 예닐곱 집 위로 올라가면 되는 가까운 곳. 동네를 가로지르는 우마차 길을 경계해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는, 우리 동네는 인근 읍면에서는 꽤 큰 동리로서 ‘면소’와 ‘주재소(駐在所)’가 있는 동리다.
울이 없는 뒷마당에 이르러서 <쌍 가매>를 불러내는데도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이 또한 놀이의 시작이니 바쁠 리 없다.
주위에 있는 돌부리도 차고 애꿎은 나무토막도 차지만 우리를 날릴 것만 같은 돌개바람에 몸을 의지할 곳이 우선 급하다.
윙윙 전봇대가 운다. 덜컥거리는 양철지붕 추녀 소리는 두 집 아래 <돼지>네 집에서 나는 소리고, 양은 냄비 개밥그릇 구르는 소리는 <쌍 가매>네 집 것이고, 윗집의 우리 속의 진짜 돼지는 날아 들어온 집단에 먹을 것이 덧붙여지지 않아서인지 애꿎은 밥통까지 뒤엎는다.
툇마루에서 몇 번을 연거푸 불러도 나오지 않는 <쌍 가매>를 합창으로 부르고서야 문이 열리었다. <쌍 가매>가 문고리를 잡고 한발을 밖에 내놓는 순간 바람이 문짝을 후려 처서 내 정강이를 때린다.
<쌍 가매>가 나왔다. 바람이 땅바닥을 쓸어서 하늘로 올리고 있다. 지푸라기와 종이쪽지가 뽕나무 가지에 걸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새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맴돈다.
태백산맥, 영마루의 내리막을 미끄럼 타고 <느네미:嶺> 골짝을 내려온 바람은 평야의 매끄러운 지면에서 기름을 칠했는지, 거침없이 곳곳을 비집고 세차게 휘몰아쳐 드나든다. 어느 곳이나 틈만 있으면 뚫고 치고 들어가 뒤집어 놓는, 천하에 없는 계절풍이니 달리는 기차인들 세우지를 않았으랴!
방은 놀이터로 적합지 않았다. 셋은 의기투합하여 마당의 볏짚 낟가리에 내던져지듯이 박혔고, 얼싸안은 셋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짚가리에 박혀있는 짚단 머리를 네 손으로 잡고 두 손은 두 허리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잡아당겼다. 한 단의 짚단을 빼고 난 다음부터는 그저 마음대로 뽑혔다.
짚단을 나란히 세워 둘러서 담을 치고, 넘어질세라 겹으로 세워서 아늑한 놀이마당을 만들고는 짚단으로 문을 내 막았다. 바닥을 짚으로 펴 깔았다. 바람이 치고 든다. 다시 겹으로 둘러서 네 겹으로 하고 문 자리는 짚 두 단으로 막았다. 누에가 고치 집을 짓듯 지었다.
최초의 인류는 비를 피했을까? 이 미련한 인간들도 비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붕이 없는 방이지만 셋이 사는 데는 아무런 흠이 될 턱이 없으니까. 아마도 지붕을 생각해서 이를 완성하고자 했으면, 대재앙의 씨앗은 트지 않았으리라. 지붕을 마련하는 일이 하루의 놀이가 되었을 테니까. 이것이 철부지의 전형이다.
제비 새끼 모양으로 나란히 앉아서 히히대고 있으려니 또 재미가 없어졌고, 짚 냄새 흙냄새도 우리의 신선한 욕구는 채워 주지 못했다. 냉기(冷氣)로 엉덩이는 깔아놓은 짚에서 들뜨고, 무릎은 세워지고 손은 비벼 댄다. 몸을 서로 붙여 비벼대도 손은 여전히 시리다. 그럴밖에, 천장 없는 집인 것을 어찌하랴. 그렇다. 화로가 생각난다. 추울 때는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손도 그 불로 녹여야 함을 아주 또렷하게 아는 우리 셋은 <쌍 가매>네 집에서 냄비와 성냥을 가져왔고 밖에 나가서 돌을 주워와서는 솥을 걸었다. 나뭇가리에서 마른 솔가지와 나뭇가지를 주어왔다. 이제 집 천장을 말고는 이름하는, 집이 되어졌다. 부엌까지 갖추었으니, 셋만을 위한 꿈의 집이 완성되었다.
기쁨에 넘친 손뼉 소리는 바람을 타고 집집의 지붕을 스쳐서 바닷가까지 날아갔으리라!
<정환>이는 돌 삼발이아궁이에 나뭇가지와 솔가지를 몇 개 쟁이고, 나는 도시락만 한 <성냥 통>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고 <쌍 가매>는 성냥 까치를 황에 대고 그었다.
불은 처음부터 크지 않았다. 연기도 나지 않았고 불꽃만이 솔솔 솟고 있다. 여섯 손바닥은 일제히 불길을 향하였고 온기는 여린 손바닥을 타고 이내 얼굴에까지 번졌다.
순간 덜컥 쿵, 양철지붕의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문이라며 쳐놓은 집단이 안으로 넘어졌다. 들이닥친 바람은 저마다의 옷섶을 위로 젖히면서 삼발이 안의 불덩이를 집단에 쓸어 붓는다. 불을 끄기에는 그 여섯 개의 손은 너무나 여리고 작았다.
불이야! 저마다 소리치며 뿔뿔이 흩어졌다.
어른들의 고함과 쉼 없이 땡땡거리는 ‘불 종(鐘)’은 바람을 타고 아랫마을로 퍼져나갔다. 땡땡땡. 불 종소리는 그치질 않았다. 집집이 아우성친다. 멍석을 지붕 위에 올리는 집, 물을 길어 대야나 개수 뚝배기로 끼얹는 집, 이미 타고 있는 집 안에 들어가서 세간을 챙기는 사람, 소방차는 있으나 마나. 수레에 실린 펌프 한 개뿐이니 그저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윗동네사람들은 집 지기 한 사람씩만을 두고 모두 아랫마을로 내려와서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한다. 흙을 얹고 이엉을 이은 집은 불붙은 이엉을 끌어 내리면 요행으로 그만이다. 그 집은 지붕이 흙으로 덮은 꼴이니 불덩이가 미끄러져서 다음 집으로 옮겨가는 미치광이 바람 덕도 보는 턱이다.
윗마을은 불길이 가려야 갈 수 없는 바람길 위에 있으니 <쌍 가매>네 집은 오히려 무사했고, 아랫마을 쪽으로 세차게 불어치는 바람 때문에 불은 순식간에 아랫마을로 옮겨 번져갔으니, 동네는 아수라장이 됐다. 차례로 타 내려가든 불은 우리 집에 와서 끝맺음 됐다.
큰일 보러 작은댁에 오신 집안 어른들이 무리 지어 오면서 작은댁의 손님맞이 멍석을 모조리 걷어 메고 왔다. 지붕 전체를 멍석으로 덮고 물로 적셔놓았다. 또 그 중 몇은 아예 지붕 위에 올라서서 혹시 나라 올지도 모를 불꽃을 지키고 있으니, 불길은 기가 꺾이고 말았다.
텃밭이 넓은 <정환>이네 집은 우리 아랫집이니 우리 집 덕에 화를 면했고 그 아랫집들은 모두 무사했다.
오십여 집이 재만 남았으며 못쓰게 된 집이 십여 채나 됐다. <쌍 가매>는 매일 ‘순사(巡査)’들로부터 과자와 사탕을 얻어먹으면서 반복된 심문 아닌 호강과 즐거움을 맛봤고, <정환>이와 나는 숨을 죽이고 이날까지 죄인으로 지낸다.
나로 인해서 많은 이재민이 생겼고, 재산 피해가 났다. 그러나 그 큰 볼도 그때 나로선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릴없는 나는 매일 불탄 집터를 기웃거리며 쇠붙이를 주워 날랐다.
남은 것이란 못과 철사 도막뿐이다.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지도 못하는 나다. 못이 신기하다. 작은 것 큰 것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전화위복이라든가, ‘원산’에서 ‘강릉’을 잇는 한길이 불탄 자리에 바르게 뚫려 펴지며 신작로가 새로 생기고, 또 그 신작로는 우리 집을 길 갓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로 해서 큰 집을 짓게 되며 내가 철들 무렵에는 다른 동무들의 부러움도 사게 되었다.
풀리지 않는 묘한 상관관계다. 눈을 감고 깊이깊이 생각해도 알 길이 없다. 이럴 때 주역(周易)이 필요한지, 아니면 주술로 풀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계획된 방화로 봐야 하는지, 수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또는 심령 과학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말이다.
우연이라면 이 기묘한 결과가 너무나 허전하다.
어째서 불을 지른 코흘리개 셋, <정환>이네와 <쌍 가매>네와 그리고 우리(나) 집만을 성하게 남기고 다른 집만 다 타버렸을까. 기괴한 일이다. 내 운명의 전주곡은 이날의 불 종소리였던가!/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