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맴돌며 꿈을 키워 가던 시절, 아련하게 잊히지 않는 옛일들, 눈을 감고 고향을 그리면 빠짐없이 떠오르고 새삼 그 일들이 반짝인다. 능력만 있다면 그때 그 시절로 어려지고 작아져서 그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 보고 싶다.
‘시계야 바늘을 거꾸로 돌려라!’ ‘천지여 거꾸로 돌아라!’ ‘그러면 나도 그 시절로 가리라!’
싸리나무로 촘촘히 엮어서 세운 울타리 밑을 갓 깬 노란 병아리를 데리고 나선 암탉은 벼슬을 세우고 뒤돌아보고 꼭꼭 거리며 땅에 부리를 비비고 끄덕이며 또 꼬꼬다. 암탉은 싸리 울타리를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병아리는 싸리 울을 비집고 자유로이 왕래해도 어미 닭은 <덕재>네 집으로는 갈 수가 없다. 어미 닭이 따라와 주질 못하기 때문에 넘어간 병아리가 삐악거린다. 보송보송한 햇병아리 두세 마리는 이미 싸리문을 뚫고 저만치 갔다가 되돌아온다. 나들이 나온 어미 닭은 먼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눈이 있어 찾는지, ‘지남철’이 있어 끌리는지, 아니면 타고난 지력으로 찾는지, 지금도 알 길은 없다. 텃밭의 나무울타리를 지루하게도 졸개 병아리를 이끌고 돌아가면서 풀을 뜯고, 풀씨도 뜯고, 낟알도 챙겨 쪼아먹는다.
늦은 봄, 석양은 <덕재>네 뜨란 감나무 그늘을 늘려 우리 집 앞마당을 물기 먹은 흙빛으로 만든다. 흔들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 내린 햇빛이 모래알을 반사해 내 눈을 찌른다. 반짝.
난 눈을 찡그리며 네 활개를 내저어 간다. 가는 곳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그렇게 가고 있다.
서 있는 곳은 <덕재>네 집이다. 깔린 멍석 위에 나란히 앉아 놀 다 보면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바람을 탄 연기가 멍석 위를 뒤덮어 햇빛을 몰아 하늘로 되가져갔건만 철부지 나는 털고 일어나 집에 갈 생각이 없다. 으레 그렇게 했던 그대로, 그날도 그렇게.
감자 익는 구수한 냄새와 된장 지지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때를 잊은 난 여기가 내 집인 것처럼 나를 잊고 있을 참이다. 어디인지를 가릴 이유가 없는 나, 내 집은 아예 없다. 우리 집은 늘 전깃불을 켜고 저녁을 먹으니 이 이른 저녁에 집에 가도 밥은 없으리라는, 그런 어른스러운 생각이 있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나는 <덕재>네 밥상머리에 앉았고 숟가락도 들었다. 첫술을 떠 입에 넣을 때 내 왼 귀가 묵직하게 아프다. 당연히 입이 아파야 할 텐데 귀가 아프다.
숟가락을 입에 물고 귀를 만지는 내 손에 또 다른 손이 내 손에 잡히지 않는가? 너무 아파서 턱을 놀릴 수가 없다. 돌아보니 <덕재>이고 그는 말이 없다. 일어나 달려들려고 했으나 이미 귀를 잡힌 채로 수세에 놓인 나는 끄는 대로 그냥 끌려 일어날 수밖에 없다. <덕재>네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응석 부리는 <덕재>를 막을 길은 없다.
집에 돌아왔다. 억울하고 아쉬워하는 나를 본 누나는 오히려 나를 윽박지르고 있다. 저녁을 왜 남의 집에서 먹으려 하느냐고.
아버지와 마주 앉은 겸상 위에는 큰 가자미 토막이 올려져 있고, 먹음직한 쌀밥이 있건만 보고도 외면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누나는 어르고 달래는데, 나는 귀가 찢어진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단지<덕재>네 그 밥상에서 먹던 밥을 못 먹은 것, 그게 억울할 뿐이다. 자주 그리 먹었으니까. 내 꿈의 세계로 뚫고 들어오려는 누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든 나는 어쩌면 당연했다.
그날, <덕재>네 집 놀이에서 <덕재>는 어떤 놀이에서 내게 젓던 적이 있었으리라. 반사적 본능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 뒤 어느 날, <덕재>가 우리 집 밥상머리에 앉았을 때 나는 수저로 <덕재>의 머리를 내리쳤다. 피가 났는지 흘렀는지는 이다음 만나서 물어볼 일이지만, 아무튼 양쪽 집 어른들은 그저 빙그레만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덕재>가 외아들이고 늦둥이이기에 <덕재> 아버지는 나를 반겼고 <덕재> 어머니는 나를 싸안았으므로 편하였고, 나와<덕재>는 우리 집과 남의 집을 구별하지 못했다. 다만 엄마 아빠가 따로따로 있을 뿐이었다.
꿈속의 시간, 나날이었다. 이다음 <덕재>가 살아서 나와 만난다면 그 일을 기억하는지 물어보고 따져보고 싶다. 왜 그랬는지? 그러면 이번엔 그도 나도 입이 절로 찢어져서 병원에 실려 갈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다.
우거진 감나무 가지가 우리 집의 우물 속에 감꽃이 떨어지는 날, <덕재>와 나는 나란히 소학교에 입학했고 또 감나무 해거리를 두 번씩이나 하고 <덕재>네 배나무 위의 까치가 훤히 트인 우리 집에 대고 울어 댈 때였다.
둘은 그림자처럼 붙어 지냈고 한 몸같이 움직였다.
어느 날, <덕재>의 제의로 선생님 집을 찾아가기로 하고 그날 밤에 ‘공회당’ 앞에서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달밤에, 약속한 ‘공회당’으로 갔다.
<덕재>가 기다리고 있기는 한데 손엔 무언가를 들고 있다.
한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새빨간 감을 내미는 <덕재>의 어깨는 올라갔고 나는 손 감출 곳을 못 찾아 쩔쩔맸다.
선생님은 얼른 나에게 성적표에 점수 적는 일을 내밀었다.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고 <덕재>의 소행이 얄밉다. 아마 <덕재>는 그 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낼 것이다. 어린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그 상흔(傷痕)은 평생을 이어가는가 보다.
지금도 나를 위해서 순수성을 벗은 듯한 친절을 남에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버릇은 여전하니 이 모양 이 꼴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엇갈렸던 희비의 두 곡선이 그 궤(軌)를 달리하여 벌어져 있다.
어려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이 어긋난 궤(軌)의 곡선을 휘어서 맞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덕재>네 집 감나무도 보고 싶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