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궤적 2008. 4. 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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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000818 찢어진 귀와 우정

집을 맴돌며 꿈을 키워가든 시절, 아련히 잊히지 않는 옛일들, 눈을 감고 고향을 그리면 빠짐없이 떠오르며 새삼 그 일들이 반짝인다. 능력만 있다면 그 때 그 시절로, 어려지고 작아져서 그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 보고 싶다.

 

시계바늘아 거꾸로 돌아라! 천지여 거꾸로 돌아라! 그러면 나도 그 시절로 가리라!

 

싸리나무로 촘촘히 엮어서 세운 울타리 밑을 갓 깨인 노란 병아리를 데리고 나선 암탉이 벼슬을 세우고 뒤돌아보며 꼬꼬 대더니 땅에 부리를 비비고 끄덕이며 또 꼬꼬 댄다. 암탉은 싸리 울타리를 뚫고 들어 갈 수가 없다. 병아리는 싸리울을 비집고 자유로이 왕래해도 어미 닭은‘덕재’네 집으로는 갈 수 가없다. 어미 닭이 따라와 주질 못하기 때문에 넘어간 병아리가 삐악거린다. 보송보송한 햇병아리 두세 마리는 이미 싸리문을 넘고 저만치 갔다가 되돌아온다. 나들이 나온 어미 닭은 먼 길을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눈이 있어 찾는지, 지남철이 있어 끌리는지, 아니면 타고난 지력으로 찾는지, 지금도 알 길은 없다. 텃밭의 나무울타리를 지루하게도 졸개병아리를 이끌고 돌아가면서 풀을 뜯고, 풀씨도 쪼고, 낟알도 챙겨 먹는다.

 

늦은 봄, 석양은 ‘덕재’네 뜨란 감나무 그늘을 길게 늘려 우리 집 앞마당을 물기 먹은 흙빛으로 만든다. 흔들거리는 나뭇잎사이로 쏘아 내린 햇빛이 모래알을 반사시켜 내 눈을 찌른다. 반짝.

 

나는 눈을 찡그리며 네 활개를 내저어 간다. 가는 곳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그렇게 가고 있다.

 

서있는 곳은 ‘덕재’네 집이다. 깔려 있는 멍석 위에 나란히 앉아 놀다 보면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바람을 탄 연기가 멍석 위를 뒤덮어 햇빛을 몰아 하늘로 되가져갔건만 철부지 나는 털고 일어나 집에 갈 생각이 없다. 으레 그렇게 했던 그대로, 그 날도 그렇게 했다.

 

솥 안의 감자가 뿜어내는 구수한 냄새, 화로에서 된장 끓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때를 잊은 나는 여기가 내 집인 것처럼 나를 잊고 놀이에 한참이다. 어디인지를 가릴 이유가 없는 나, 내 집은 아예 없다. 우리 집은 늘 전깃불을 켜고 저녁을 먹으니 이 이른 저녁에 집에 가도 밥은 없으리라는, 그런 어른스런 생각이 있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나는 ‘덕재’네 밥상머리에 앉았고 숟가락도 들었다. 첫 술을 떠 입에 넣을 때 내 왼 귀가 묵직하게 아프다. 당연히 입이 아파야 할 텐데 귀가 아프다. 숟가락을 입에 물고 귀를 만지는 내 손에 또 다른 손이 잡히지 않는가? 너무나 아파서 턱을 놀릴 수가 없다. 돌아보니 ‘덕재’이고 그는 말이 없다. 일어나 달려들려고 했으나 이미 귀를 잡힌 채로 수세에 놓인 나는 끄는 대로 그냥 끌려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덕재’네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야단을 처도 응석부리는 ‘덕재’를 막을 길은 없다.

 

집에 돌아왔다. 억울하고 아쉬워하는 나를 본 누나는 오히려 나를 욱지르고 있다. 저녁을 왜 남의 집에서 먹으려 하느냐고. 아버지와 앉은 겸상 위에는 큰 가자미 토막이 올려져 있고, 먹음직한 쌀밥이 있건만 보고도 외면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누나는 어르고 달래는데, 나는 내 귀가 찢어진 것조차 억울하지 않았다. 단지 ‘덕재’네 그 밥상에서 먹든 밥을 못 먹은 것이 억울했다. 자주 그렇게 먹었으니까.

 

'덕재'는 그 날 저네 집 놀이에서 내게 젓던 적이 있었으리라.

내 꿈속의 세계로 뚫고 들어오려는 누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는 어쩌면 당연했다.

 

반사적 본능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 뒤 어느 날, ‘덕재’가 우리 집 밥상머리에 앉았을 때 나는 수저로 ‘덕재’의 머리를 내리 쳤다. 피가 났는지 흘렀는지는 이다음 만나서 물어볼 일이지만 아무튼 양쪽 집 어른들은 그저 '빙그레'만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덕재’가 외아들이고 늦둥이라는 것 때문에 ‘덕재’아버지는 나를 반겼고, ‘덕재’ 어머니는 나를 싸않았으므로 편하였고, 나와 ‘덕재’는 우리 집과 남의 집을 구별하지 못했다. 다만 엄마 아빠가 따로 따로 있을 뿐이였다. 꿈속의 시간, 나날들 이였다.

 

이다음 ‘덕재’가 살아서 나와 만난다면 그 일을 기억하는지 물어보고 따져보고 싶다. 왜 그랬는지? 그러면 이번엔 그도 나도 입이 절로  찢어져 올라 얼싸안고 병원에 실려 갈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다.

 

'덕재'네 감나무 가지가 쳐 우거져서 우리 집의 우물 속에 감꽃이 떨어지는 날, ‘덕재’와 나는 나란히 '소학교'에 입학했고 또 감나무 해 거리를 두 번씩이나 하고 ‘덕재’네 배나무 위의 까치가 훤히 트인 우리 집에 대고 울어 댈 때였다.

 

둘은 그림자처럼 붙어 지냈고 한 몸같이 움직였다. 어느 날, ‘덕재’의 제의로 선생님 집을 찾아가기로 하고 그 날 밤에 공회당 앞에서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달밤에 약속한 공회당으로 갔다. ‘덕재’가 기다리고 있기는 한데 손엔 무언가를 들고 있다. 한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새빨간 감을 내미는 ‘덕재’의 어깨는 올라갔고 나는 손 감출 곳을 못 찾아 쩔쩔맸다.

 

선생님은 얼른 나에게 우리 반 애들 성적표에 점수 적는 일을 내맡겼다.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치 못하는 내가 부끄럽고 ‘덕재’의 소행이 얄밉다. 아마 ‘덕재’는 그 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낼 것이다. 어린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그 상흔(傷痕)은 평생을 이어가는가 보다.

 

지금도 나를 위해서 내 순수성을 벗은 친절을 행동으로 남에게  옮기지 못하는 버릇은 여전하니 이 모양 이 꼴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엇갈렸던 희비의 두 곡선이 그 궤(軌)를 달리하여 벌어져있다.

 

어려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이 어긋난 궤(軌)의 곡선을 휘어서 맞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덕재’네 감나무도 보고 싶다./외통-

 

-그대, 만약 열심이라면, 나중으로 밀지 말고,

지금 곧 이 순간에 할 일을 시작하라.-J.G.괴에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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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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