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종가의 비밀을 육순의 나이에 상상해 본다는 것은 부질없을까?
지붕은 손끝에 닿을 듯 나직이 장지문을 가려 드리우고, 한낮의 햇빛조차 툇돌을 비켜 떨어져, 장지문은 어둑하다. 빗 엮은 문 살 대가 뽀얗게 매질한 흙벽과 아우러져 더욱 작게 돋아 보인다. 동그라미 문고리에 반짝이는 이음쇠, 오직 이 문고리 하나로 조상과 내가 통하여 있고 이 문고리만이 한을 토하는 할머니의 절규 어린 한숨에 반응했고 이 문고리에 샘솟는 생명의 환희가 녹아 배어 있다.
한 가문의 과거가 이 문고리에 매달린 외쪽 장지문을 통하여 들락거렸고, 지금 여기 이어가는 한 가족 삼대가 그 끈을 간신히 이어, 이 문고리에 매달아 놓는다. 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어 기약 없이 떠난 임, 님의 소식 기다리며 눈물로 지새다 못 견뎌서 밖을 향해 튕겨 나가며 잡아 제친 문고리!
한겨울에, 물기 있는 손으로 이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얼어붙었기에 겨울철 나날의 추위를 가늠했고, 북간도로, 러시아로 간 낭군의 추위를 가늠하는 할머니의 온도계였다.
이 문고리와 문설주에 맨 여닫이 끈은 낭군님의 발걸음 소린가 하여 문을 여닫는 할머니 솥 끝에 닳아서 몇백 번이나 갈아 매어야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여닫는 손길이 이토록 때를 묻혀 길들여 반질거린다.
이 문고리에 옥양목(玉洋木) 끈을 달아매어 틀어쥐고 세대를 이었고, 이 문고리에 실 매어서 자라는 애 이 갈이 했다.
가을 하늘 맑은 날에 창호지 바를 때에, 문고리 가장자리에 단풍잎 놓아 덧바르며 님의 손길 그렸고, 긴 겨울을 지나고 배 주린 봄을 넘어서 비지땀 여름 견뎌내노라고 미어진 창호지를 비집고 단풍잎 다섯 가락이 문드러졌을 때 내, 임의 손을 보셨다.
오두막 초가삼간, 여기가 발복(發福) 지다. 여기에 몸을 의지하고 때때로 봉 제사 모시고 해마다 시제 상 돌보고 문중 대 소가의 구심점이 된 할머니의 청상(靑孀) 수절이 하늘을 감하고 땅을 동해서 오늘 내가 있고 또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내년, 후년, 그 후년, 십 년, 백 년, 대를 이어가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여기 그 문고리에 매어 태어난 한 매듭, 손(孫)이 종가의 초가집 문고리를 기억한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