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181.970301 퇴락頹落한 종宗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종가의 비밀을 육순의 나이에 상상해 본다는 것은 부질없을까?

지붕은 손끝에 닿을 듯 나직이 장지문을 가려 드리우고, 한낮의 햇빛조차 툇돌을 비켜 떨어져, 장지문은 어둑하다. 빗 엮은 문 살 대가 뽀얗게 매질한 흙벽과 아우러져 더욱 작게 돋아 보인다. 동그라미 문고리에 반짝이는 이음쇠, 오직 이 문고리 하나로 조상과 내가 통하여 있고 이 문고리만이 한을 토하는 할머니의 절규 어린 한숨에 반응했고 이 문고리에 샘솟는 생명의 환희가 녹아 배어 있다.

한 가문의 과거가 이 문고리에 매달린 외쪽 장지문을 통하여 들락거렸고, 지금 여기 이어가는 한 가족 삼대가 그 끈을 간신히 이어, 이 문고리에 매달아 놓는다. 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어 기약 없이 떠난 임, 님의 소식 기다리며 눈물로 지새다 못 견뎌서 밖을 향해 튕겨 나가며 잡아 제친 문고리!

한겨울에, 물기 있는 손으로 이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얼어붙었기에 겨울철 나날의 추위를 가늠했고, 북간도로, 러시아로 간 낭군의 추위를 가늠하는 할머니의 온도계였다.

이 문고리와 문설주에 맨 여닫이 끈은 낭군님의 발걸음 소린가 하여 문을 여닫는 할머니 솥 끝에 닳아서 몇백 번이나 갈아 매어야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여닫는 손길이 이토록 때를 묻혀 길들여 반질거린다.

이 문고리에 옥양목(玉洋木) 끈을 달아매어 틀어쥐고 세대를 이었고, 이 문고리에 실 매어서 자라는 애 이 갈이 했다.

가을 하늘 맑은 날에 창호지 바를 때에, 문고리 가장자리에 단풍잎 놓아 덧바르며 님의 손길 그렸고, 긴 겨울을 지나고 배 주린 봄을 넘어서 비지땀 여름 견뎌내노라고 미어진 창호지를 비집고 단풍잎 다섯 가락이 문드러졌을 때 내, 임의 손을 보셨다.

오두막 초가삼간, 여기가 발복(發福) 지다. 여기에 몸을 의지하고 때때로 봉 제사 모시고 해마다 시제 상 돌보고 문중 대 소가의 구심점이 된 할머니의 청상(靑孀) 수절이 하늘을 감하고 땅을 동해서 오늘 내가 있고 또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내년, 후년, 그 후년, 십 년, 백 년, 대를 이어가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여기 그 문고리에 매어 태어난 한 매듭, 손(孫)이 종가의 초가집 문고리를 기억한다. /외통-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08.04.22
구유  (0) 2008.04.19
전깃불1  (0) 2008.04.17
삿자리  (0) 2008.04.15
  (0) 2008.04.14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