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자리

외통궤적 2008. 4. 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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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5.001104 삿자리

우리가 자랄 때는 간혹 ‘고콜’이 있는 집, 즉 관솔을 태워서 방을 밝히는 집이 있었는가 하면 콩기름등잔으로 방을 밝히는 집이 태반이었다. 좀 신식 집이라야 고작 석유 ‘남포’를 써서 방을 밝혔다. 주로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하는 방이 안방이다.

 

 

이 안방이 우리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주 무대이다. 대대로 나고 대대로 죽는 자리가 또한 이 방이다. 낮에는 작업실이면서 식당이 되고 저녁이면 거실이 되고 밤이 되면 침실이 된다. 우리네 생활은 주거에서 공간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편의성과 합리성을 버무려서 복합적용도로 쓰였나보다. 제대로 갖추고 사는 집이야 안 그렇겠지만 보통 사람, 민초들의 집은 이렇다.

 

온돌방에 하얗게 흙질을 하고 그 위에 갈대를 쪼개서 다듬고 엮어서, 엮는다기보다는 절어서 만든 삿자리를 까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양식 양탄자를 까는 이치와 같지만 기능은 전혀 다르다. 방 크기에 맞추어서 엮은 갈대로 만든 삿자리는 서민용이요 나무의 껍질을 다듬어서 만든 자리는 그래도 행세깨나 하는 집에서 깔고 산다. 그러나 기능은 같다.

 

산실이 되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이 여기에 있다. 깔린 삿자리를 걷어 내고서 볏짚을 깔아 놓음으로써 산모의 몸부림으로 인한 바닥과 신체와의 마찰충격을 흡수하고 갓난이가 세상에 나올 때에 머리의 충격을 또한 흡수한다. 출혈과 태반을 흡착하고 감싸서, 요즘같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태울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데 있어서는 그저 그만이다. 산모의 수발과 갓난이의 목욕물을 데우기 위한 아궁이 불이 구둘 바닥 흙을 데우며 실내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고, 짚을 눅인 물기가 구둘 바닥과 어울러서 흙 향과 짚 향을 풍기며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여 완벽하게 실내의 온 습도를 자동 조절하여 갖춘다. 즉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이고 환경 친화적이며 자급조건의 최소 공배수이다.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게 지어졌는데 이 엄숙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데는 안방과 삿자리가 그 한 몫을 또 이어왔다. 안방은 가정의 중심적 공간이고 모든 중요행사의 장이 또한 안방이다. 삿자리를 걷어내고 불을 때지 않음으로써 방을 차게 하고 짚을 깔아서 열을 차단하고, 흙냄새를 풍기게 하고 향을 피워서 가신 이의 방향(芳香?)을 중화하며 혹시라도 환생할지도 모를 일루의 희망을 끝까지 견지하며 가까이에서 마지막까지 지켜보곤 했다. 이 얼마나 고인에 대한 최상의 예우이며 환대인가. 이즈음 사람들은 죽음을 남의 일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자신이고 우리의 삶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봄볕이 아무리 따스하다 해도 춘궁기의 농촌 사람에게는 야속한 볕이다. 봄볕은 느슨하게 내려와서 성급한 우리네의 삶에 맞추어서 달구어 내리지 않는다. 땅에 묻었든 벼를 말릴 자리는 한정돼있고 며칠씩 말리자니 애간장이 탄다. 이럴 때 방안의 삿자리를 걷어내고 방구들에서 벼를 말리면 당일로 바싹 말라서 방아를 찧을 수 있다. 걷어 냈든 갈 자리는 틀림없이 먼지가 털렸을 것이고 일광소독도 완벽히 끝맺어서 지금우리네처럼 법석을 떨지 안 해도 됐다. 그때에 현대식 건조실이 있었어도 멀고 운반하기 귀찮고 번거롭기만 했을 것이다. 이에 비한다면 삿자리는 즉석이고 즉시이고 즉흥이다. 이때에 일광 소독도 했고 방의 흙질도 했으니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삶인가.

 

대가족시대의 식솔이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하는 즐거움, 또한 그때는 별났다. 어른 한분에게 반드시 어린이 하나씩을 달려서 겸상을 차렸고 나머지 어머니와 여자 애들은 둥그런 두리반에 둘러앉아서 먹게 되는데, 이때에 어린이들은 식사에 대한 예절과 곡식에 대한 귀함을 배운다. 밥알을 다루는 어른의 솜씨로 이를 익히고 실행한다. 갈 자리의 절대적 우위는 이 식사 때에도 발휘된다. 국을 쏟았을 때는 국물이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스며들고 건더기만 주워서 상위에 얹으면 된다. 어른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대가족이다 보니 갓난아기에게 일일이 아랫도리를 입힐 수 없고, 벗고 지낼 수 있는 절후까지는 벗긴다. 헌데 수시로 누는 대소변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지금 젊은이의 상상을 초월한다. 소변일 때는 그저 그냥 버려두면 밑에 스며서 없어지고, 대변일 경우에는 문을 열고 한마디만 하면 '누렁이'가 즉시 달려 들어와서 반반히 핥아서 깨끗하게 한다. 다음 물걸레로 닦으면 된다. 처리시간은 단 일분, 식사시간에도 아는 듯 모르는 듯 처리되는 이 기막힌 삿자리의 유용성을 옛 이는 어디에서 배웠을까 슬기롭다. 경외한다.

 

거실 구실을 하는 삿자리 안방은 어린이들의 자유로운 놀이터이고 활개 치는 무대이다. 어떤 놀이에도 다칠 염려가 없고 아무리 불을 때도 데일 염려가 없다. 삿자리의 탄력성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흙방 바닥과 삿자리 윗면사이는 언제나 공기가 흐르고 이 공기는 방의 보온과 열의 차단은 물론 탄력적이어서 쾌감마저 있다.

 

삿자리 방은 삿자리를 들어내면 흙방이 되는데 이 흙방의 위생처리가 단순하고 간편하여서 봄 가을 또는 수시로 가능하다. 비록 물자는 풍요롭지 못했지만 대단히 위생적으로 살았다. 일 년에 두 번 이상은 내부 단장을 한 꼴이니까 말이다.

 

내가 이 삿자리 방에서 낫고 삿자리를 깔고 먹고 싸며 자랐다. 이 갈 자리의 ‘어머니’ 갈대는 지금 한창 갈꽃을 피우고 하늘을 향해서 나부끼며 옛 영화를 노래하는데, 옛것을 모르는 오늘의 젊은이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사진만 찍어댄다.


나는 ‘삿자리’ 코드다./외통-

 

-슬기로운 자는 현재인양 대비한다.-프블리우스 시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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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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