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마무리가 덜 됐다. 처마 밑 툇마루와 부엌 쪽마루 감은 우리 집 섶 갓에 생소나무인 채로 서 있고, 지붕은 날아갈 듯한 기와집 형태지만 기와는 아직 기와 공장의 주인 머릿속을 덮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방으로 들어가는 문 밑에 툇돌이 놓여 있고, 올려져 있는 지붕은 진흙을 덮은 그 위에 볏짚만이 올려있다.
대님도 매지 않고 허리띠도 못 맨 채 허리춤을 잡고 서성거리는 선잠 깬 어설픈 나처럼, 우리 집은 새로이 더 붙일 것은 붙여야 하는, 아홉 칸(間) 초가집인데, 집안사람과 동네 분들의 권고도 있긴 하였지만, 아버지의 구상(構想)으로 지은 집이고, 그때로는 제법 신식으로 지었다.
아홉 자 기둥 높이는 목 고개를 젖히고서야 서까래가 보이고, 부연을 부처 달아낸 서까래는 둥글고도 길게 나와 희고 늘씬하다. 그 석가래 사이사이는 붉으리 한 흙 새벽으로 발라서 제법 현대 감각에도 어울리게 지었다.
아홉 자 기둥 집은 동네엔 몇이 없었다. 더구나 새벽으로 칠한 집은 우리 집이 처음이니 동네에선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홉 칸짜리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아닌, 초가집이 됐다. 그러고 우리도 남을 곁들이게 됐다.
우리 집 곁방살이를 온 ‘응철’이네는 농사지을 논밭도 없고 벌이도 없는지, 늘 신작로 한길 가인 우리 집 툇돌 위에 배 광주리와 읍에서 받아온 소주 장군을 나란히 놓아둔다.
여름내 그 배 광주리를 남의 집 호박 보듯, 아니 호박이라도 그렇다. 찔러 보고 싶고, 냅다 차기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난들 왜 없었으랴만 난 그렇지 않았다.
한길로 나가다 보면 꼭 눈앞에 크고 소담하게 다가오는 배 광주리가 어린 내 마음을 뒤흔든다. 수북이 쌓인 광주리에서 배 한 개가 곧 굴러떨어져서 내 앞으로 오는 것 같은 환상으로 눈앞이 아찔하다. 그냥 달려가서 하나 들고 내닫고 싶다. 그럴 때는 몸서리 쳐진다. 그럴 때마다 그 광주리가 뻗는 유혹의 마수를 떨치고자 온 힘을 다해 뛴다. 배 광주리를 피해 쏜살같이 신작로를 건너간다.
건너편 길가로 들어서면 배 광주리는 내 시야에서 잠적해 버리기 때문이다.
자갈길 신작로 가운데가 불룩이 돋아, 우리 집 높이를 절반으로 줄여 놓아 툇돌 위의 광주리에 담긴 배를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고개를 빳빳이 들어서 우리 집을 건너보아도 광주리는 보이지 않는다.
차츰, 솟던 욕구도 묻혀간다.
억눌러야 하는 나, 오직 말없이 체득한 어머니의 가르침, 묻어 버려야 하는 내 마음과 함께 우리 집조차도 바닥부터 절반쯤 곧 묻혀 버렸다.
이번에는 건너편 가게로 가서, 선반에 나란히 얹어놓은 사탕 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색색의 ‘눈깔사탕’이 ‘석유 초롱’ 같은 양철통에 가득한데, 통에 붙은 네모진 유리를 뚫고 내 눈알과 막 부딪친다.
우리 집, 내 정서적 환경으론 이 두 곳이 침해(侵害) 지역인 셈이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지나시다 보셨으면 얼마나 상심했을까? 그런 때에 혹 한길에서 어머니를 뵈었어도 집엔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배를 바라봐야만 하는 그 고통을 받아야 하니까.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는 멀리 돌아 뒤란으로 숨어 들어가, 그 돌덩이 같은 배 광주리를 외면했다.
무엇으로 위로받고 보상받으려나! 아무리 먹고 싶고 갖고 싶어도 어머니가 주지 않는 것이면 나는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배이고 그림의 눈깔사탕일 뿐이다.
여름 한 철이 지날 무렵 ‘응철’이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내게 배 한 개를 내놓고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한때 너무나 참기 어려웠든 나의 행동을 아셨다. 칭찬하는 두 분 어머니께 말할 이성조차 없었으리라!
쓰리던 내 감정이 회오리 같이 몰아치고, 울화는 조그만 내 가슴을 뻥튀기 압력으로 높였다. 드디어 폭발됐다. 그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으나 진동하는 어깨 방아는 어머니 팔을 방아고 질을 시켰다.
여덟 살 때 일이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