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묫길

외통궤적 2008. 5. 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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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010130 성묫길

대립과 갈등, 지배와 저항, 억압과 해방, 이 모든 대립적 모순은 유사 이래 인류가 안고 오는 불가분의 본질적 재앙이다. 이 숙명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나타나는 개혁의 이름으로 밀려드는 물결을 타지 못하고 저항하고 거스르는 수구의 진용은 언제나 고달프고 지치게 마련이다. 그런가하면 개혁을 호도(糊塗)하여, 이미 개혁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오랜 전통마저 그르치는 혁신파는 어느 시기나 있게 마련이다.

해방과 함께 닥친 개혁의 물결 앞에 미풍과 양속은 한동안 혼미 속에서 비틀거리며 그 명을 이어갔지만, 지금은 가볼 수 없고 듣지 못하는 먼 곳에 있으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내 조상 우리‘어버이’가 어디에 계시든지 계시는 곳만이라도 알 수 있게 될 날만을 고대하고 있다. 그분들은 이미 개혁이나 수구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이 영면(永眠)의 자리를 잡아야하는 이 땅을 먼저 살다 가신 우리의 뿌리이기에 그렇다. 그 분들은 각기 개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수구의 편에서 개혁파를 있게 했고 전통을 지키려는 이에겐 높은 성과 깊은 해자(垓字)를 만들었으니 개혁의 기치를 들고 설치는 선봉장에게 넘고 건너는 대상으로 있게 했음으로 피차는 시대를 이은 등가(等價)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앞장서서 저마다 외치느니 구습의 타파다. 해방되든 그 해의 추석날 성묫길에 웃을 수 없는 진경(珍景)이 벌어졌다.

탕아의 표본인 양, 집안의 돈이 될 만한 것은 차례로 내다 축내며 몇 달씩 떠돌다가 돈이 떨어지면 집에 돌아와서 노부모를 모시는 부인을 괴롭히면서 주먹질과 칼질을 하든 어떤 가장의 이야기다. 그는 대를 잇고 터 잡아 행세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랄 때에 무얼 어느 정도 배웠는지, 외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어린 내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망나니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 소문은 어머니의 귀를 통해서 낱낱이 들렸다.

해방과 함께 돌아온 그는 극렬한 행동당원으로 변했고 마을은 그를 질시하며 외면했다.

성묘객은 아침 일직부터 일제에 의해서 강제 조성된 공동묘지로 줄을 이어 들어갔다. 조상의 기제사를 미신으로까지 싸잡은 그들이었기에 끈질긴 방해로 해서 그 부인은 자기 집에서 조상의 차례를 준비하지 못하고 이웃집을 빌려서 겨우 제수를 장만하여 함지박에 담아 이고 나가셨다. 애들을 협박하여 부인의 제수 준비를 알아차린 그는 쏜살같이 달려서 공동묘지로 갔다. 많은 성묘객 틈을 돌아다니며 두 눈을 부라리고 휘젓고 있다. 먼 곳, 남의 묘역에 두었든 제수를 이고 막 들이닥친 부인의 행동을 나무라지만 부인은 이미 들어차 있는 동네 분들의 힘을 믿고 애들과 함께 시어머니 묘소에 제수를 올린다. 그는 거들기는커녕 미친 사람처럼 묘역을 돌더니 애들과 부인이 그들끼리만이라도 절을 올릴 기미를 차린 그는 얼른 봉분 위로 올라가서 양다리를 틀고 제수가 차려진 제상을 내려다보고 앉았다. 부인과 자녀들은 아연, 움직이지 않았다. 자녀들은 살아있는 문관석(文官石)이 됐고, 부인은 살아있는 ‘원부석(怨夫石?)’이 돼버렸다.

이 기막힌 상황을 깡그리 지켜보든 동네 사람들은 그를 피해서 슬금슬금 내려갔고 모자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으나 끝내 성묘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로 인해서 그는 지방 당의 상당한 요직을 맡았는지는 모른다.

이들 부부는 해방의 격랑을 헤엄치며 전통 고수와 호도된 개혁의 대립구도를 극명히 드러냈다. 그때 들은 이 소문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사색(思索)의 폭을 넓히며 여전히 시대의 주인은 누군가가 선한 역을 하고 또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하는, 선악을 불문하고 반드시 겪어야 할 산통(産痛)인 것 같아서 더욱 미궁으로 빠지듯, 혼미한 내 생각만 늘어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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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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