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天方地軸)'이란 별호를 달아주신 어머니의 늘 타이르는 말씀은 ‘먼눈을 팔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르시는 말씀은 집 모퉁이를 돌아서 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감감히 잊는다.
내 타고난 본성인지, 뇌 기능 탓인지는 몰라도 목적이 정해질 때까지는 생각이 골똘하여 사물을 식별하는데 둔하다. 누가 옆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행동하는데, 일단 할 바를 찾았다. 하면 거침없이 꿰뚫는 성급함과 그 일을 위해서는 밥도 잊고 시와 때도 잊는다.
어느 해 여름에 동무들하고 무작정 헤매며 동구 밖에 있는 넓은 공터로 달려갔다. 우리는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싫증 났던지, 누군가의 제안에 의했던지, 우르르 다른 곳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어젯밤 내린 비로 초목은 윤기 흐르고, 땅은 깨끗이 씻겨서 먼지 하나 없는 촉촉한 땅이 됐다.
신을 신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발자국 하나 없이 싱싱하고 탄력적인 땅, 지난밤에 새로 지어 갓 태어난 풀 섶 길이다. 간지럽게 느껴서, 신을 벗어서 들고 마음껏 발을 구르며 다지고, 느꼈다. 저마다 제 발자국을 따로 만들어서 대지와의 발맞춘 흔적을 남기려 했다.
도랑을 끼고 양쪽에 철길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봇도랑 위의 검은 찰흙을 보고 모두는 자기의 발자국을 먼저 남기려 했다.
그러나 도랑을 건너뛸 엄두는 누구도 내지 못한다. 나는 때를 만난 듯이 몇 발 물러서서 힘차게 앞으로 달려서 뛰어 건넜다.
풀과 물과 탄력 있는 흙이 한데 어우러진 가장자리에 겨우 양발을 붙일 수 있었다. 솜 위에 발이 닿는 듯 비길 데 없이 포근했다. 그러나 내 오른발의 촉감은 달랐다.
오른발바닥의 안쪽이 허옇게 벌어져서 선혈이 흐르고, 반사적으로 움켜쥐고 악을 썼다. 더러는 모르는 채 도망을 가고, 그래도 누군가 집에 알렸던지 어머니께서 달려오셨다.
‘그러게, 한눈을 팔지 말라고 하지 않았니?' 하시며 그 넓은 땅에 하필이면 깨진 유리병 숨어있는 곳을 딛느냐는 책망이다.
둘러댈 말도 없고 핑계 댈 엄두는 더욱 못 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나를 업고 집에 가시어 치료해 주셨다.
어머니 마음을 지금에서야 읽는다. 얼마나 극성을 피웠기에, 여럿 중에 왜 너냐?, 살펴서 건너지 않았느냐?, 는 책망과 함께 훗날을 걱정하며 긴 한숨을 쉬었을 성싶다.
어머니의 염려는 적중했다. 이날까지 많은 상처를 몸에 지녔다. 그중에서도 필연인지 몰라도, 반대편 발인 왼발의 꼭 그 자리에 그만한 상처를 갖게 됐다.
앉아서 발을 모으고 내려다보면 묘한 감회에 젖는다. 내 삶과 무슨 인연이 있어서? 아니면 발놀림에 문제가 있어서? 짝을 이룬 상처는 무슨 뜻이 있는지, 지금쯤은 누가 알려주든지, 스스로 깨닫든지, 해야 할 때인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내 상처. 이마 한가운데와 양발의 발바닥 안쪽의 상흔은 삼 바리처럼 버텨서 나를 지켜 주지 않았는지?. 기묘한 대칭적 상흔(傷痕)이 괴이(怪異)쩍다. /외통-
일만하고 놀지 않는 아이는 바보가 된다. (j.하우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