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외통궤적 2008. 5. 2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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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001110 천방지축

'천방지축'이란 별호를 달아주신 어머니의 늘 타이름 말씀은 ‘먼 눈을 팔지 말’라는 것이다. 이르시는 말씀은 집 모퉁이를 돌아서 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감감히 잊는다.

 

내 타고난 본성인지, 놔 기른 탓인지는 몰라도 목적이 정해질 때까지는 생각이 골똘하여 사물을 식별하는데 둔하다. 누가 옆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행동하는데, 일단 할 바를 찾았다하면 거침없이 꿰뚫는 성급함과 그 일을 위해서는 밥도 잊고 시와 때도 잊는다.

 

어느 해 여름에 동무들하고 무작정 헤매며 동구 밖에 있는 넓은 공터로 달려갔다. 우리는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실증을 느꼈던지, 누군가의 제안에 의했던지, 우르르 다른 곳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어제 밤 내린 비로 초목은 윤기 흐르고, 땅은 깨끗이 씻겨서 먼지하나 없는 촉촉한 땅이 됐다.

 

신을 신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발자국 하나 없이 싱싱하고 탄력적인 땅, 지난밤에 새로 지어 갓 태어난 풀섶 길이다. 간지럽게 느껴서, 신을 벗어서 들고 마음껏 발을 구르며 다지고, 느꼈다. 저마다 제 발자국을 따로 만들어서 대지와의 발맞춤 흔적을 남기려 했다.

 

도랑을 끼고 양쪽에 철길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봇도랑위의 검은 찰흙을 보고 모두는 자기의 발자국을 먼저 남기려 했다.

 

그러나 도랑을 건너 뛸 엄두는 아무도 내지 못한다. 나는 때를 만난 듯이 몇 발작을 물러서서 힘차게 앞으로 달려서 뛰어 건넜다.

 

풀과 물과 탄력 있는 흙이 한데 어우러진 가장자리에 겨우 양발을 붙일 수 있었다. 솜 위에 발이 닿는 듯 비길 데 없이 포근한 했다. 그러나 내 오른 발의 촉감은 달랐다.

 

오른발 바닥의 안쪽이 허옇게 벌어져서 선혈이 흐르고, 반사적으로 움켜쥐고 악을 썼다.

 

더러는 모르는 체 도망을 가고, 그래도 누군가 집에 알렸던지 어머니께서 달려 오셨다.

 

‘그러게 한 눈을 팔지 말라고 하지 안했니' 하시며 그 넓은 땅에 하필이면 깨진 유리병 숨어있는 곳을 딛었느냐는 책망이시다.

 

둘러댈 말도 없고 핑계 댈 엄두는 더욱 못 냈다. 어머니는 아무말씀 없이 나를 업고 가시어 치료해주셨다.

 

어머니 마음을 지금에서야 읽는다. 얼마나 극성을 피웠기에, 여럿 중에 왜 너냐, 살펴서 건너지 않았느냐, 는 책망과 함께 훗날을 걱정하며 긴 한숨을 쉬었을 성싶다.

 

어머니의 염려는 적중했다. 이날까지 많은 상처를 몸에 지녔다. 그 중에서도 필연인지 몰라도 반대편 발인 왼발의 꼭 그 자리에 그 만한 상처를 갖게 됐다.

 

앉아서 발을 모으고 내려다보면 묘한 감회에 젖는다. 내 삶과 무슨 인연이 있어서? 아니면 발놀림에 문제가 있어서? 짝을 이룬 상처는 무슨 뜻이 있는지, 지금쯤은 누가 알려주든지 스스로 깨닫든지 해야 할 때인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내 상처. 이마의 한가운데와 양발의 발바닥 안쪽의 상흔은 삼 바리처럼 버텨서 나를 지켜 주는지. 기묘한 대칭적 상흔(傷痕)이 괴이쩍다. /외통-

 

일만하고 놀지 않는 아이는 바보가 된다.(j.하우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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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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