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에는 떡도 못 해 먹고 엿은 더더욱 안됐는데도 우리 할머니는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당신의 희생으로 감내하고 이루어 갔다.
엿은 한겨울에 내린 눈이 키를 넘겨서 길이 끊길 때 고았고, 떡은 첫새벽에 빚으니, 남들이 깰 때는 일은 이미 끝난다.
할머니의 부지런 탓이기도 하겠지만 평생을 두고 맺힌 한 풀 길을 못 찾다가 이제 아버지의 자수성가로서 모처럼 이루려는데, 시절이 이를 가로막으니 할머니인들 의지를 굽힐 수가 있겠는가.
새벽부터 내린 눈이 제법 쌓여서 눈을 받아 안은 배나무 가지의 힘이 한계에 이르렀다. 가지 위의 눈 뭉치가 떨어지며 늘어졌든 가지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눈가루를 튀긴다. 뭉치 눈을 떠안은 바로 아래 가지는 수북이 쌓인 윗가지의 눈 더미를 보태서 또 그 아래 배나무 가지를 때리며 쏟아낸다.
아침내, 배나무의 눈 꽃송이는 잇달아 쏟으나 그 소리는 없다. 솜 위에 솜을 얹는 고요한 아침이다. 만상이 아침잠을 자는 듯, 보이는 것은 내리는 함박눈뿐, 하늘도 희고 땅도 희고 집집이 올리는 연기조차 희다. 배나무 위의 놀란 까치가 가지를 옮겨 앉아 아침을 알릴 뿐이다.
먹잇감을 찾는 참새만이 흰색을 피해서 눈 치운 황토마당에 찾아들어 재잘대다가 부엌문 앞으로 몰려 들뿐, 오가는 이 없는, 집집이 외딴집이 된다.
하루 내내 눈 오고 종일 엿 고았다.
갓 지은 우리 집은 내화(耐火) 설계(?)가 진보된 형식으로 돼 있다. 지붕 위에다 진흙을 이겨서 두껍게 깔고 그 위에 이엉을 얹어서 장차 기와를 얹을 대비를 했고, 방마다 그 천장 위에도 진흙을 이겨서 두껍게 깔았기에 기둥만 나무로 노출됐을 뿐 모두 흙으로 덮인 ‘방화 요새(要塞)?’다.
조청 엿, 된 엿, 판 떼기 엿, 을 따로 만들어서 단지에 담고 이를 방위에 저절로 만들어진 다락 아닌 다락에 사다리를 놓아가면서 올려놓고는, 방 두 개 넓이의 안쪽 깊은 곳에 밀어 넣었다. 이런 아버지의 수고는 효심으로 녹아내려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이제 눈이 녹고 길이 뚫려서 ‘애국 반장’이 와도 동네 ‘구장’이 온다 해도, ‘면장’이나 ‘순사부장’이 온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이제는 거뜬히 벗어버린 가난, 외롭고 긴 기다림의 한을 할머니는 이렇게 풀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