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고향에 간다면 무엇부터 할 것인가? 부모 형제, 집안 대소가, 친구, 학교. 다음은?
강낭콩 알이 포기에 매달린 채 싹트고, 강냉이 수염에 물기 마를 날이 없던 지루한 장마가 지났다.
큰물 진 뒤에 모래 더미가 생겼다. 그 큰 물길에 생긴 단층(斷層)에 드러난 희한한 돌들, 가지런히 쌓인 돌 더미 앞에, 숨을 죽이고 눈앞에 꽉 찬 돌 더미 가운데에 서본다. 유난히 잘생긴 한 개의 돌에다 초점을 맞추어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 돌 속에 조상이 있고 나라가 있고 우주가 있을 것 같았다.
돌 더미에서 무늬가 없고 희고, 팔뚝만 한 것을 정성스레 뽑아 촉촉이 묻은 물기를 볕에 말려서 이리 보고 저리 보다가는 조막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훑어본다.
이미 치솟은 태양은 쪽빛 바닷물 위에 뜨거운 열기를 뿌리며 밤새 식었든 냇가 돌에도 열기를 내리쏟는다.
이끼를 벗은 하얀 돌 위에 출렁이는 물그림자 사이로 한 무리의 은어 새끼들이 번뜩인다. 붉게 물든 강변 해당화에서 뿜어내는 향기, 그 사이를 한가롭게 서 있는 송아지 딸린 암소, 그 옆을 지나가며 아직 저만치 쳐져 눈 파는 코흘리개를 연신 뒤돌아보며 머리에 인 바랭이 똬리에 손이 올라가는 아주머니 손이 바구니 오른쪽을 잡더니 어느새 다른 한 손이 젖무덤을 비벼댄다. 젖먹이가 있는가? 아마 점심거리 감자랑 상추랑 쑥갓이랑, 길가 풀 섶을 헤치고 잠시 따낸 딸기도 있을 것 같다.
모자는 주위의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찍 말린 날개를 시험하는 양 노랑나비만이 그들 모자와 나 사이를 오갔다. 젖비린내와 해당화 향기에 취한 노랑나비는 잠시 나를 어릴 적 꿈길을 헤매게 했다.
단층은 굵은 돌로 쌓였고 작은 절벽을 이루었다. 그 절벽 밑을 하얀 모래가 깔렸고 그 위를 구비 지어 흐르는 물길이 났는데, 그 속엔 송사리 몇 마리가 노닌다. 장마철 큰물이 만들어 낸 새 땅이다.
이는 완벽한 소우주다.
물길을 거슬러 댓 걸음 올라가면 어느새 그 물길이 없어지며 자갈만 수북하다. 자갈 틈으로 물이 새어 흐르기 시작하는 곳이다. 없어진 물길, 마른 모래 위엔 큼직큼직한 물결 무늬가 또렷한데, 그 위를 성큼성큼 걸어간다.
깨끗하게 씻은 돌을 모실 돌집을 짓기로 했다.
단층의 한중간에 차릴 양, 주위를 고르고 바닥에 돌을 깔고 기둥을 세워서 넓은 돌을 지붕으로 덮었다. 이제 돌을 모시면 되는 것이다.
잘 모셨다. 한 발짝 물러서서 보고 두 발짝 물러서서 보고, 옆으로 비켜서서 보고, 앉아서 보고, 누워서 보고, 어떻게 보던 이 집은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알고 나 혼자만이 비는 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가 될 집임에는 손색이 없다. 그 자리에 실제로 내가 있듯, 그렇게 내 머릿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날마다 그곳에 가서 그 돌에다 빌었다. 신비롭고 경외할 대상, 자연이 안긴 내 집, 나의 고향이 여기인 것 같은, 환상에 잠겨서 한 달을 넘겼다.
방학은 끝났다.
그 후로는 돌보는 이 없는 돌집이 됐고, 내년 장마 때는 또 다른 내 작은 우주가 탄생할 것이다.
‘상봉’이 이루어진다면 냇가로 달려가서 세월이 지나고 물이 지난 자리의 어딘가에 있을 단층을 찾아서, 먼 길을 한 바퀴 돌아온 내 육신 안에 그 작은 우주를 또다시 맞을 것이다. /외통-
고결한 자의 기념비는 그의 덕행이다. (에우리피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