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외통궤적 2008. 5. 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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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010323 손목시계

시계는 부의 상징이고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짧은 순간 가늠쇠로 구실 한 한때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집을 크게 장만하고 내부 장식을 호화로이 꾸미려고 하는 것과 같이 그 시절의 시계는 대단한 인기 물목이었다. 적어도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그랬다. 중학교엘 가도 시계를 차고 있는 애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벽걸이 시계를 장만한 지 오래되지 않은 우리 집이고 보니 시계의 필요성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다. 시간이란 생활의 복잡성을 알릴 뿐이고 시계 볼 한가한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굳어져 있는 우리 집의 정서다. 시계가 없으니, 시간에서 해방되어 있고 자연의 순환이 우리 집의 시계로 되었으니, 자연의 모든 게 우리 생활의 지침이다. 하늘을 보아 해시계가 있고, 배가 고프면 끼니때로 알고 어두우면 일이 끝나고 새벽닭이 울면 일이 시작되는 것이니 시계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 널려있는 것이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기차의 기적소리가 우리 집 시계다. 그 실, 집에 시계가 있어도 볼 사람이 없다. 할머니는 시계를 아예 외면하시고 순전히 감각으로만 추려 나가셔도 평생을 불편 없이 사셨다. 그러니까 우리 집의 시계는 벽에 매달려 있는, 그저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계는 움직이는 날보다 서 있는 날이 더 많다. 우리 집의 생활 리듬에 쫓아서 맞춘 틈이 내가 행동하는 데 필요한 시계의 구실을 한다. 그 많은 시계를 두고 내 손목에 시간의 쇠고랑을 찰 이유가 없지만, 실은 그만한 여유와 마음의 준비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우리 집 식구 중에 아무도 시계에 관심 있는 이가 없었던 것은 모름지기 우리 집의 삶의 축이 농사일이고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밤낮없는 농경 생활이니 집은 쉼터로만 여기고 대를 이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는 일도 없고 약속은 날 기준이지 시간기준이 아니므로 시계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한데, 이런 중에도 내 생활이 서서히 우리 집의 생활권을 벗어나면서 시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숙 생활을 하면서 오릿길을 걸어서 다녀야 하는 등굣길이 시계의 필요를 절감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내 처지는 손목시계 같은 건 추호도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니 깨끗이 체념하여 내 마음은 담담했다.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 있을 때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돌다리를 건너는 지름길로 갈 수 없어서 멀리 있는 큰 다리로 건너 돌아서 물 건너 ‘동자원’ 바닷가의 밭일을 도우러 가려고 ‘김완식’이라는 초등학교 한 학년 위의 친구네 집 앞을 지나고 있을 때 그가 뛰어나와 길을 가로막으며 반색한다. 아마도 무료하게 지내든 그가 나를 보고 반가웠는가 보다. 그는 부친이 경영하시는 술도가 집 아들이고 여유롭게 학업은 계속할 수 있는 처지에도 공부를 미루고 있는 선배다. 생활의 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므로 평소에 의기상투하질 않았으나 평소에 그가 나를 신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전에 만져보지도 못했든 시계를 만져 볼 수 있는 기회를 내게 넌지시 부탁했다.

내가 남의 돈을 맡는다?! 그것도 며칠이 걸릴지 모를 무제한의 신뢰로 위탁하는 것이다. ‘고저’ 읍의 시계방에 자기의 손목시계를 수리하도록 맡겼는데, 좀 찾아 달라는 게다. 돈까지 주면서 부탁하는 그는 웃음의 꼬리를 눈가에 늘이고 나를 신뢰하는 빛으로 빤히 마주 보면서, 손을 공손히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난 이 선배가 나를 이토록 믿는, 뜻밖의 신뢰에 적이 놀랬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시계 보관증과 수리비까지 맡기면서 신뢰의 몸짓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인정받는 나 자신을 알아채며 ‘신뢰’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고 쾌히 승낙하고 받아 넣었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밝은 얼굴로 집으로 들어갔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주일은 아직도 몇 주 남았다. 그 선배의 신뢰에 찬 행동에 보답하기 위해서 몇 주를 앞당겨서 집으로 내려가면서 시계방을 찾았다. 보관증과 함께 수리비를 묻고 찾은 시계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 만져보는 시계다. 하지만 손목에 차지는 못했다. 아니 차볼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아예 따로 보관하여 가져가고 말았다.

내 것이 아닌데 어떻게 차고 가느냐? 지극히 바보 같은 짓이지만 거기엔 나름의 철학이랄 수 있는 다짐이 있었다. 시계는 내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그럴수록 내 손목에 찬다는 것이 더욱더 범죄적 가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 물건이 가벼운 것, 장갑이나 만년필쯤이었다면 모름지기 장난삼아서 끼거나 찼을 법 도하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물건이 내겐 보물과 같이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일은 지극히 단순한 일인데도 내게 감정의 교차가 있었고 심리적 갈등이 공존하는, 순수한 나의 시계에 대한 무한한 가치 확대가 가져온, 잊을 수 없는 한 작은 체험이었다.

그는 반색하며 받아들였지만 나는 태산 같은 금덩이를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먼 길을 정성 들여 운반해 시계 주인 잦아 돌려준, 그런 큰일로 기억되고, 한편 그렇게도 갖고 싶었든 손목시계를 한 번쯤 차보고 내주었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내가 대견해 보인다.



여러 개의 시계를 서랍에 넣어 썩히면서도 거들어 보지 않는 지금의 나와 그때 헌 시계를 천금같이 여겼든 나와 다른 것이 없는 난데, 왜 이리도 마음 한구석에 그때의 일이 그렇게도 잊히지 않는 건지, 이런 내 심리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서, 내 능력이 요만큼밖에 되지 않는구나 자탄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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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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