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건널목에 다다르기 전, 우리 동네에 들어오기 전의 ‘철 다리’ 목에서 꼭 우리 동네 어린이들에게 알리는 듯, 반드시 기적소리를 요란하게 울린다. 예외 없이 울렸다.
우리는 이 소리를 신호로 하여 건널목 쪽으로 달려간다. 아직은 보이지 않으나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를 맞으려 나란히 늘어서서 기다린다. 가까워지는 '화통'을 바라보며 오늘의 기관사가 우리의 거수경례에 응답할 것인지, 그냥 무심하게 지나칠지를 마음 설레며 그 기차를 맞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관사들도 단조로운 들판이나 허허한 강변을 지나면서 그들의 고향과 그들의 가족을 떠올리며 그들의 가족들처럼, 금방이라도 함께 숨 쉬며 어울릴 수 있는, 우리를 반긴다. 비록 우리가 그네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어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향수를 불러내는, 작은 불씨 정도는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통에 달린 커다란 쇠 바퀴 틈에서는 하얀 김을 내 뿜어내어 우리의 접근을 미리 경계하며, 기관사는 우리가 늘어서서 반듯하게 거수경례를 올리는 데 대해서 정중하고 무게 있는 손을 올려서, 역시 우리들의 방식을 따라 답한다. 이게 그날의 우리 꼬마들의 기분을 들뜨고 즐겁게 하고 가슴을 꽉 채워주는 청량제 구실을 한다.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그 건널목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이 행사를 치르고서야 뭉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다. 이번에는 정거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렇게 크고 그렇게 긴 기차, 아침저녁으로 어김없이 두 번 올라가고 내려가는 기차 속에 내가 아는, 진정으로 나를 안아 줄 이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한, 그런 나날이다.
화물차가 철길을 따라 옮겨서 다른 철길로 들어서는 이치를 보고 깨닫는 것은 큰 재미 중의 하나였다.
그때의 내 생각. 철길 두 가닥이 끝에 가서는 어떻게 마무리가 됐을까 하는 단순하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철길이었다. 이런 철길을 볼 때마다 생각했는데, 훗날, 이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내 고민만큼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철길의 두 가닥 모양, 내 마음을 그와 합치시킬 수 없어서 답답했다. 능력이 있다면 그때 내 나이, 그 장소로 돌려서 설명했으면 속이 시원하게 될 것 같은데 그도 안 되고 내 표현능력도 한계이고, 그렇게 가슴이 조였던 한때도 있었다.
철길은 내 어린 시절의 낭만이었고 풍선같이 부품 꿈의 철길이었다. 우리 동네 정거장에서 내리는 몇 안 되는 손님을 보는 것도 심심하지 않은 우리들의 구경거리다.
올 벤 논의 벼 포기에서 파란 새순이 돋고, 방앗간 마당에 달구지들이 늘어서고, 나뭇잎도 길바닥을 굴러서 길가 후미진 곳에 쌓일 때쯤이면 내 마음은 설렌다. 올해도 오실 것 같은 고모, 내 마음이 정거장으로 가 있다.
고모는 기별도 없고 기약도 없건만,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내려가는 기차는 빠뜨리지 않고 ‘대합실(대기실)’ 지킴이가 되는, 내 이즈음의 오후 일과가 되었다. 작년에도 이맘때 오셨고 재작년에도 이맘때 오셨다. 올해도 오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모를 마중하려는 내 마음은 철석같이 변함이 없다.
고모가 오시는 것은 내가 동무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큰 이변이다. 일 년을 다 보내도 단 한 분이신 고모만이 우리 집을 찾을 뿐이다. 이것은 아버지 남매의 쓸쓸한 일생이다.
고모가 오심으로서 내가 받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희망에 차서, 오늘도 오후의 정거장은 내 고모님 마중, 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이 일을 아시면 더 마음이 아프실 것이 걱정돼, 몰래 홀로 나들이하는 꼴이다.
끈기 있게, 아니지 놀이 삼아서, 개찰구를 지켜보는 내 눈앞에 내 꿈이 실현됐다.
고모는 쪼그리고 앉아서 나를 안아 주셨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오래, 고모를 그리면서 고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장서서 날다시피 뛰어 가 알렸다. 어머니가 달려 나와서 고모의 보따리를 받으셨고 고모는 나를 업어 주셨다. 얼마만의 호사인가.
감나무에 빨갛게 매달린 감이 빙빙 돌고 있었다. 고모는 재주가 많으셨나 보다. 내 바지도 만들어 오시고 누비이불도 누벼 오시고 사탕도 사 오시고, 아무튼 내게 좋은 추억은 모두 고모일 것뿐이다.
어릴 때 본 고모는 그때 눈으로 그때 감정으로는 이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 고모를 어떻게 해드려야 할 것인지 지금의 내가 너무나 무력하다. 이미 흘러갔다. 신이시여! 우리 고모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