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외통궤적 2008. 5. 1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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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001102 버릇

보수적 기질과 혁신적 기질은 유전인지 아니면 후천성 습관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내게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의 내 생활상으로 보아서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중의 몇 가지가 회상되지만, 옷 입는 버릇을 그 하나로 들 수 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 것, 어머니가 집안사람들이나 이웃 분들과 나누는 말씀 중에 아들의 불통고집에 관한 말씀이 있었다.

 

아들의 고집을 고쳐 보는데 도움이라도 청하시려는 듯 자랑 아닌 흉, ‘첫물에 무릎 해지는’ 옷 버릇을 광고하시는데,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는 못하지만 좋지 않은 것인 줄은 눈치 채고 있었다.

 

내가 한 번 입은 옷을 벗지 않는 이유는 새 옷이나 빨래한 헌옷을 새로 입으려고 할 때, 그 옷이 지금까지 입던 옷과 비교해서 그 모양이나 입은 느낌이 그때까지 입고있던 옷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계속 입던 옷은 몸에도 익숙해서 어울리는 것 같고 동무들의 집중적 시선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헌옷이건 새 옷이건 새로 입으면 이때까지의 내 모습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된 듯 하고, 내가 여럿에게 노출 돼서 주목받는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지극히 폐쇄적, 자폐증의 심한 증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내가 처음 입는 옷은 무슨 트집이든 잡아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입기 일 수다. 그러면서도 일단 한번 입었으면 그 옷은 내 몸에 맞는 걸로 마음을 굳힌다.

 

아무리 새 옷이라도 입다가 무릎언저리나 팔꿈치 언저리에 구멍이 나면 즉시 벗어 던지고, 그 때 입히는 다른 옷은 군소리 안하고 고분고분 입지만 그 옷이 기운 옷이거나 바늘구멍만 한 것이라도 구멍이 나있으면 안 입고 트집을 잡아서 어머니를 속상하게 했다.

 

말하자면 구실을 찾아서 내가 입어서 해진 옷을 합리화하는데 연막을 쳐서 얼버무리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해서 나의 옷 갈이는 비로써 이루어지고 이후는 내 옷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름의 솜옷, 겨울의 삼베옷이래도 일단 입었다면 떨어지지 않은 이상은 벗을 이유가 없으니, 내겐 더러움이나 계절은 상관이 없는, 늘 신나는 하루하루다. 발이 시리거나 땀이 나거나 무신경하고, 오로지 나 아닌 엄마가 판단해주는 외곬 촌뜨기였던 가보다.

 

또 딴 버릇은 눈이 길길이 쌓인 한 겨울 화로를 차고 앉아서 책보는 버릇도 뺄 수없다.

 

발바닥을 화로의 굽에 붙이고 손목을 화로의 주둥이에 바쳐서 책을 드는 버릇인데, ‘오뉴월 불도 쬐다가 안 쬐면 섭섭하다‘ 고, 포근한 날씨래도 방에만 있으면 화로를 끼는, 이것이 또한 고질인 내 나쁜 습관 중의 하나이고 이를 고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내가 집을 떠나는 전환점에서야 고쳐졌다. 결국 집에서는 고치질 못한 셈이 되니까 알만한 악습이고 고집이다.

 

또 있다. 한창 성장하는 때라서 그랬을 것 같기는 해도,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운 일이다.

 

우리 집에서 가난 극복을 위해서 온 식구들이 힘을 모아 실행을 할 때에 나만이 예외를 고집했으니 어지간한 고집쟁이다.

 

누구나 같겠지만 돌도 깨물어서 갈아먹을성싶은 튼튼한 이에 깨물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흰죽을 먹으라니, 정말 싫었다. 해서 흰죽을 쑬 때는 별도의 깨물 거리를 마련하신다.

 

콩을 볶는다든가 감자를 별도로 쪄서 준다든가 찬밥을 준비한다든가, 그러나 절대로 밥을 따로 짓지는 않으셨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이런 베푸심은 내 마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셨다. 아마도 저를 위해 밥을 따로 지으셨다면 이 밥을 먹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 성정(性情)은 고칠 수 없지만 성정을 깔고 그 위에 현실을 살아가는 요령을,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남들에게 보이며 살아가기는 쉬운가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여전하게 묵은 것을 놓지 않으려는 타성이 이어지긴 마찬가지다.

 

방안 가득히, 집안 빽빽이 물건을 쌓아놓고 버리질 못하는 습성이 아직 살아 도사리고 있다. 이럴 필요가 없이 그냥 그때에 맞는 옷을, 생활용품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영 그른 것 같다.

 

순수한 성정을 살린 나대로의 생활이 고집으로 보여도, 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으니 어찌하랴. /외통

 

번영할 때의 거만은, 역경에 처했을 때의 비탄이 된다.(T.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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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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