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는 솔밭, 앞은 제방을 낀 시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널따란 둑을 따라 ‘염성’ 뜰의 봇물이 넘쳐흐르는 곳, 이곳이 우리 마을의 산신제 터다.
이곳에는 오늘 많은 사람이 모여 분주히 움직인다.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낸다.
산신제는 이미 끝났다. 제물은 동네 가가호호에 알뜰하게 나누어지며 올해의 풍년을 산천에 빌고 빈다. 한해의 농사가 풍요롭고, 탈 없이 이루어지게 하는 제사다.
몇 개의 가마솥에서는 김이 솟아 가마솥 너머의 저쪽 사람들의 모습조차 가린다. 장작불은 돌 삼발이를 녹일 듯 불길을 내뿜고 검은 연기는 꼬리를 달아 소나무 키만큼이나 높이 솟구친다.
파릇한 풀잎이 새봄의 향을 연기에 말아 뻗은 가지 끝 솔잎에 전하고, 촉촉하게 눅어진 땅은 땅 밑의 봄을 솔뿌리에 알리는데, 우리 동네와 우리 집과 그 속의 어린 생명, 나에게도 봄이 왔는지, 진동하는 국 냄새에 코가 벌렁거린다.
뚝배기를 냄비에 담고 이를 다시 보자기에 싸주시는 할머니의 당부, 아버지의 이름이 불리거든 냄비째로 들고 가서 속에든 뚝배기에 국을 받되 냄비 손잡이를 들고 오라는 말씀이다.
되든 안 되든 말씀에 따르는 내가 이곳에 왔다. 오래지 않아 국 배급과 고기 배급이 시작되었다.
고기는 없을 것이란 내 생각과는 다르게 고기도 몇 점을 국그릇에 넣어주는 아저씨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를 위해서 특별히 주는 것 같았다. 쳐다보는 그 아저씨의 눈은 아버지를 아시는 것 같고, 나도 알아보듯 예의 바르게 대해 주셨다.
참을성 없는 내가 아니지만, 유혹의 마수에 걸렸던지, 너무나 맛있어 보였던지, 그냥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숲 한쪽 옆에 국그릇을 놓고 가마솥 언저리에서 나무꼬챙이를 주어왔다. 엄지손가락 크기 고깃덩이를 나무꼬챙이로 ‘낚아?’서 기어이 건졌다.
한입에 넣고 씹어서 넘겼는지 그대로 넘어갔는지 알 길은 없지만, 집에 다다를 무렵부터 명치끝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꼼짝할 수 없다.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침을 맞는다, 뜸을 뜬다, 집에선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내게 묻는 한마디는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다.
내가 만일 안 먹었다고 했다면 우리 집에서는 산신령님의 노여움으로 돌리고 한바탕 큰굿이라도 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그날 취한 이 이중의 심리를 지금도 나는 이해하지를 못한다. 마치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은 그 심리일까?
그렇다면 나중에 먹었다고 자백한 것은 죄의 사함을 고백하는 원초적 양심의 행동이었을까?
내가 우리 마을에의 초등학교 시절, 자주 이곳을 지나가게 될 때마다 입학 전에 있었던 이 일이 내 마음을 짓눌러댔다.
아직도 그 솔밭을 지난다. 나는 환상에 젖는다.
쇠고기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일 년에 한 번, 이 산신제 때만 맛볼 수 있는, 가난하기도 하겠지만 도살 허가를 내주지 않는 일(日)인들의 정책의 단면이기도 한, 그런 귀한 음식이었다.
이 나이 되어서, 내 앞가슴에 새겨진 동그란 뜸자리를 볼 때마다 온갖 상념을 헤엄친다.
금석(今昔)의 쇠고기 한 점이 나의 이 한 입에서 가난과 풍요의 역사를 되씹어 보게 한다. /외통
시대는 변하고 우리는 시대와 더불어 변한다. (로테어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