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걱정

외통궤적 2008. 5. 15. 09:32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468.001025 장마철걱정

어린 내가 걱정할 일이 무엇이 그렇게 많아서, 긴 여름 한 철을 그토록 그늘에 가려서 지내는지, 그 때는 까닭을 알려고도 하지 안했다. 그저 우울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장마 때문에 농사일에서 손을 놓게 되는 아버지께서는 이 때를 이용해서 삼을 하시러 먼 길을 떠나가신다. 그러면 집에 남는 식솔들이 큰 소의 배를 채워 주어야 한다.

 

철이 여름이니 생풀을 먹여야 하는데, 이 몫이 내게로 돌아오니 나는 이를 피할 도리가 없다. 명색이 장부가 아닌가? 장부가 있으면서 치마를 두른 여자들이 소를 끌고 들에 나간다거나 꼴지게를 지게 된다면 장부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나는 그 날 이후 동네에서 병신아이로 취급 될 것이고, 놀림 받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않는가. 해서 어떻게든지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하기 때문에 밥만 먹으면 비옷을 챙기고 소를 몰고 들로 나간다.

 

비옷이라고는 해도 마대의 반쪽을 안으로 집어넣어서 머리에 걸쳐 쓰고 등 뒤로 내리면 되는 것이다. 많은 비에는 당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옷을 적시는, 임시방편의 비옷이다. 도롱이라는 제법 제대로 된 비옷이 있긴 해도 무겁기도 하려니와 이 도롱이는 머리와 허리를 수그리고 일할 때 쓰는 전용 비옷이라서 지금 내가 쓰고 소를 지키는, 내게도 일이랄 수는  있있지만 서서 소먹이는 용도에는 걸맞지 않다.

 

가랑비면 그런 대로 버티고, 소나기이면 나무 밑이나 인근 농막을 이용해서 적당히 넘긴다. 하지만 일기를 보아가며 내가 싫다고 해서 소의 배를 적당히 채워 줄 수는 없다.

 

소는 나를 절대적 존재로 믿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집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는 소의 '배 장구'와 상관되어서, 내배 곯는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소의 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하늘이 서쪽 준령을 너머에서 검은 구름을 몰고 오면 머지않아서 큰비가 올 것이고 동쪽 바다의 솔 섬에 하늘이 보이면 비가 그치고 잠시 가랑비가 가끔 오는 것도 할머니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꾀를 부려서 내 소먹이에 써먹을 수는 없다.

 

비가 오는 때는 땅에 물이 스며서 땅이 물러지고, 그래서 논두렁에서는 소를 먹일 수 없다. 밭이 아니면 큰길가에서 먹이게 된다.

 

먼 곳 아득히 또 다른 소가 풀을 뜯고 있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바닷가에서 낮게 펴져 깔리더니 저녁연기는 마을을 회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아직 안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장마는 더 계속 되려나보다. 며칠을 더 기다려야 아버지는 돌아오실 테고 날은 그때쯤 개일 것이다.

 

소는 날이 저무는지 내 배가 고픈지를 알 바 없이 신작로 가의 짧은 풀포기에 정신을 팔고, 파리 없는 한 때를 꼬리가 늘어지게 즐기고 있다. 어쩌면 소는 비 오는 날의 식사를 더 즐기는지 모를 일이다. 비 오는 날에는 날 파리나 쇠파리가 날 수 없을 테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먼 곳에서 ‘워’‘워’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소 쪽으로 달려오는 아저씨가 보인다.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이미 내 곁에 와서 우리 소 꼬리에 이어져서 있는가 싶었는데 하늘을 향해서 두 다리를 번쩍 드는 것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그 황소의 기세에 눌려 한 발 짝 뒤로 물러나고, 그 황소는 우리 소를 덮쳤다.

 

그 아저씨는 아버지의 이름을 물었고, 웃으면서 ‘송아지 나면 이 아저씨에게 인사해라’ 고하며 그 싸움소를 몰고 돌아갔다.

 

무슨 소리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며칠 후 돌아오신 아버지에게 우리 소와 큰 황소가 싸운 일에 대해서 확인시켜 들였다. 그 때 아버지의 얼굴은 활짝 펴지셨다. 우리 소는 암소였다.

 

먼 훗날, 그 소싸움은 ‘흘레(혼례)’이고 경사(慶事)였음을 알았다. 이렇게 아들의 작은 걱정은 아버지의 큰 기쁨으로 뒤바뀌었다.

 

그러면서 나도 함께 자랐다. /외통-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선행을 몰래 하고

그것이 우연히 드러나는 일이다.(C.램)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신제  (2) 2008.05.16
문어발  (0) 2008.05.16
크레용  (0) 2008.05.14
개똥참외  (0) 2008.05.14
오디  (0) 2008.05.13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