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외통궤적 2008. 5. 1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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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0012018 오디와 버찌

짙푸르다 못해 검고, 검다 못해 잿빛마저 감도는 오디가 건드리기만 하면 오물거리며 기어갈 것 같다.

커다란 오디 세 개와 꼭지가 곁붙어서 쌍둥이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개량 버찌 세 개가 아이 책상마다 하얀 종이 위에 놓여 있다. 버찌 꼭지는 손장난을 참지 못하는 우리를 발광하게 하며 몸서리치게까지 한다.

하지만 엄하신 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니 깨물어 볼 수도 없거니와 만져 볼 수도 없다. 고개가 책상 바닥에 닿고, 볼이 책상 바닥에 닿도록 들여다보아도 오디는 알겠는데 세 가닥 꼭지에 달린 버찌 세 개는 어디서 나는지를 알 수가 없었으니 내남없이 지껄이면서 삿대질이다.  

유리창을 뚫고 비추는 햇살이 뭉개어진 책상 모서리의 칼자국을 셈하며 수없이 빗 그어진 책상 뚜껑의 연필 자국을 가다듬는다. 손바닥만 한 빛줄기가 남쪽 유리창에 바둑판같이 발붙이고 비스듬히 내리꽂아 아이들의 갖가지 이야기를 빨아 댕긴다. 창틀 그림자가 교단 앞 빈자리에 네 모잡이 사다리를 그렸다.

선생님은 손뼉을 치시고 버찌와 오디를 설명하고 난 다음 먹도록 허락하신다.

신입생을 위하여 교정에 있는 버찌와 학교 텃밭에 있는 뽕나무에서 정성스레 따 담아온, 그것은 전교생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신입생 우리에게만 돌아오는 것이다. 한 반뿐인 일 학년인 데도.

그 새 맛, 그 귀여움, 하얀 백지 위에 놓인 단 두 가지의 단조로움, 신선한 향,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아 늘 맑은 하늘 위를 나는 기분이다. 오디와 버찌가 햇병아리에게 잘 어울리는 천국의 식단임엔 틀림없다.

그 아름답고 청아한 구도(構圖)는 내 평생 다시 보지 못하고 말 것이다. 전 교직원이 우리 어린것들을 위해서, 온 학교를 떠서 작은 백지 위에 옮겨 놓았던 정성을 지금에서야 느끼고, 그 버찌와 오디와 백지, 이 삼지(?)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파란 하늘같이 맑아 온다.

학교가 새록새록 그립다. 교정에 서보고 싶다. /외통-



마음이 기쁘면 얼굴빛이 아름다워진다. (j.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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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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