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딱지 배

외통궤적 2008. 5. 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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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001014 솔 딱지 배 ]

예전엔 요즈음처럼 어린이 놀잇감으로 상품화 된 것이 별로 없었다. 시골생활에서 자연은 그 전부가 놀잇감이고 자연 속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어떻게 갖고 노느냐는 것만 생각하면 되었으니 그렇게 측은하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놀잇감은 대개 형이 동생을 위해서 재주껏 만들어주었을 때라서 형이 있는 동생은 그런대로 마음을 채울 수가 있었다. 또 여러가지 방법들을 의논하고 동참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내겐 친형도 사촌형도 없으니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든지 아니면 체념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되는 숙명이고, 명쾌하고도 단순히 결정하는 습관도 그래서 굳어젔을 것이다. 한편 동생을 위해서 만들어 주면서 내가 갖지못했든 물건들을 간접적으로 만족 할 수가 있긴 했다.

 

또래들이 물에 띄우는 나무배를 만들기로 했다. 겨우내 주어모아서 나무 가리 한 쪽 모퉁이에 감추어 두었던딱지를 끄집어냈다. 그중 제일 두껍고 긴 것을 골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작은 식칼하나를 들고 나와 양지바른 툇돌에 엉덩이를 붙이고 능숙하게 다듬는다.

 

요놈의 솔 딱지만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칼을 대는 대로 깎이고 파이는, 이 솔 딱지만 같으면 누구에게라도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것 같다. 게다가 주무르는 재미도 있어서, 솔 딱지의 옆을 깎을 때는 그 솔 딱지에도 나이테로 보이는 예쁜 세로줄이 촘촘하게 깔려있으니 보기에 아름답고 부드러워 한층 정겹다. 다만 옹기 만드는 찰흙처럼 붙였다 떼었다할 수가 없고 깎이면 그만인 것이 아쉽다. 처음부터 정신을 차려서 깎아야 되니 신경이 좀 쓰일 뿐이다. 실패하면 처음부터 새로 깎아야 한다. 돌을 다듬는 자세로 해야 됨직 한데, 그렇지 못하고 실패하는 때가 자주 있다.

 

그 때부터 푹푹 들어가는 칼자국에 매료되어서 가지가지 모양의 솔 딱지 배를 만들곤 했는데 제법 갖출 것은 다 갖추는 조선기술을 터득하고 있던 나는 오늘도 배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는 내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배의 안은 제법 깊게 파서 고기를 잡아넣는 만선의 기쁨도 예감한다. 멋진 종이 쌍 돛을 앞의 것은 작게, 뒤의 것은 크게 달고 방향타를 배 뒤 꽁지에 자유로이 움직이도록 적당한 탄력을 두어서 꽂고 돛 끝엔 멋진 리봉도 맨다. 배 밑창 바닥엔 작은 못 하나를 세로지게 꽂아 평형을 유지케 한다. 이로서 완성이다.

 

이런 돛배를 만드는 데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해 얻은 경험으로, 이제는 물위에 띄워도 넘어지지 않고 바람을 받을 수 있는 크기의 돛의 안배도 어림으로 할 수 있다.

 

샛바람이 솔솔 부는 오후의 과수원 뒤 샘터다. 솟은 샘물이 넓게 고여 못을 이루었다가 꼬리를 내려 멀리 바닷가로 흘러간다. 가장자리는 오리 떼만 한가로이 떠가고, 흰옷 입은 엄마 두셋이 늦은 빨래 감을 내리는 한가로운 한낮이다. 햇빛이 반사되어 눈에 불꽃이 튄다.

 

샘이 이룬 못의 꼬리 쪽으로 가서 바람을 등지고 섰다. 비록 바람의 힘을 받아서 가기는 하되 물을 거슬러서, 내가 바라는 곳에, 무인 돛배를 정확하게 보내고자하는 내 작은 소망은 이루어질까?

 

설레기 시작했다. 방향타를 적당히 고정하고 바람의 방향과 진행방향을 가늠하여 돛을 꽂은 다음 허리를 굽혀서 한 손은 배를 잡아 돗방향을 잡아주고 다른 한 손으론 배를 잡아 물위에 조용히, 조심스레 내린다. 거듭하여 가고자하는 방향에 도달 할 것인지를 시험하고 나서 드디어 배를 완전히 놓아버린다.

 

내 배가 가야 할 곳은 저 건너, 이 못의 원천인 솟는 샘가의 디딤돌에 앉아서 물을 길으려는 내 어머니 차림의 발밑에 가야 한다. 시작은 순조롭다. 이대로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어머니께로 갈 것이다.

 

그러나 못 한 가운데를 떠갈 때 한 무리의 오리가 위쪽의 물고기를 쫓아 물갈퀴를 휘젓는 바람에 풍랑이 일어 돛배는 출렁이며 밀리고 밀려서, 내가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과수원 언덕 밑에 닿았다.

 

거기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물과 과수원 땅이 맞붙어서 기다란 언덕을 이루고 있다. 과수원 철망이 물가에 바짝 부쳐 처지고 물은 내 허리를 넘으니 아무에게도 구조의 요청을 할 수 없는 곳에 닿아 있다. 한참을 바라보던 내 마음은 서글퍼졌다.

 

그 배는 거기서 밤도 새고 낮도 지내면서도 다른 오리 떼의 회오리에 침몰 될 위기를 몇 번이고 겪었을 것이지만 오랫동안 견뎠을 것이다. 믿는다.

 

아쉬운 내 배의 운항이다. 어쩌면 그때 그 돛배는 내 인생의 풍파를 예고했는지도 모른다./외통-

 

-인간의 의지는 천지를 바꾼다.-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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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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