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아람

외통궤적 2008. 5. 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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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001017 밤 아람

할머니께 졸라서 다짐을 받아냈다. 내일 새벽엔 누구보다도 일찍 깨워달라며 신신 부탁을 드리고 일찍 잠을 청해 보지만 널려 있는 알밤이 눈에 선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비비며 대문을 나서는 내게, 집밖을 나설 때마다 꼭 한 마디씩 주시는 할머니의 훈계말씀이 오늘도 예외 없다.

 

당부의 말씀은 달려있는 밤을 따려고 나무나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이다. 남의 것을 축내지 말아야 하고 떨어지는 밤을 보려고 고개를 들 때 떨어지는 밤송이에 맞아서 눈이 멀 수도 있고, 던진 나무나 돌에 다른 사람이 맞아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옳고 지당한 말씀이다.

 

허나 떨어지는 밤알에 맞아 보았으면, 하는 것이 오늘의 내 심경이고 바램이다. 아직 나는 밤알이 송이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여름내 품어 안아서 키우고 살찌운 알톨 밤을 땅위에 떨어뜨리는 그 순간은 생각 만해도 풍요롭고 신비하고 경외할 일이다.

 

많은 이가 땅위에 있는 밤톨은 보았을망정 떨어지는 순간을, 다시 생각하면 아람이 송이에서 이탈하는 과정을 본 사람이나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바람이 불 때는 바람에 의해 충격 받아서 그렇다고 치고, 미동도 하지 않는 밤송이에서 떨어진다 함은 그 밤송이와 밤알이 약속한 바로 그때다. 자연만이 온전히 알 수 있는 그 순간을 포착한 사람은 행운이고 유복하다고 할만하다. 해서, 엄숙한 섭리에 반하여 강제로 떨어뜨림은 내가 바라지 않는다.

 

날이 환하게 밝았다. 곧 떨어질 것 같은 아람이 파란 하늘바탕에 흔들거린다. 반질거리는 알밤은 방금 떨어진 것이고 조금이라도 습하면 오래 전에 떨어진 것이다. 땅 위에 떨어져 튀기는 소리는 들려도 밤알은 뵈지 않는다. 올려보면 안 떨어지고 내리 보면 떨어진다. 조화롭고 신기하다. 아무리 원해도 내 머리에 맞아주지 않으니 내 손으로 주어 담은 밤으로 내 머리 위에 떨어뜨려나 볼까?

 

울안에 있는 밤나무라도 울 밖에 떨어진 밤톨은 주은 사람 것이라는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 가을 감나무 꼭대기에 남겨진 까치밥과 겹친다.

 

어린 시절. 어느 풍요로운 가을의 새벽을 되새겨본다./외통-

 

 

-성격이 명랑한 사람이 오래 산다.-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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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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